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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0.04.07 신촌기차역 1
  8. 2010.03.05 아감벤과 동물철학
  9. 2010.01.22 벤야민이라는 검은 가방 운반하기 1
  10. 2009.12.13 에로스의 에토스

헤겔과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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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者(Oneness)에 이르는 형이상학의 길과 一者를 사는 예술의 길
: Hegel과 莊子철학의 비극성 비교


 

1. 세계와 나를 이어주는 “하나(Oneness)”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湯氣以爲和.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敎, 我亦敎之.
强梁者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어둠을 등에 지고 밝음을 품에 안고 있으니, 섞어 휘저은 기로써 조화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고독과 부족과 불곡인데, 제왕과 제공들은 이로써 자기를 부른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치란 덜어짐으로써 보태어지고, 보태어짐으로써 덜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을 나 또한 가르칠 뿐이다.
모든 강폭한 것은 제명을 살지 못하는 것이니, 나는 이로써 가르침의 으뜸으로 삼고자 한다.
―老子, 道德經, 四十三章.


1-1.
문화가 물질적 유산이며 제도일 뿐만 아니라 그 물질들을 규합하고 배치하는 정신이기도 하다면, 하나의 문화는 적어도 다음의 세 가지 정신적 차원을 자신의 구성적 기반으로 삼고있는 것 같다.

1-2. 하나의 문화는 우선 그 문화의 구성원의 정체에 대한 공유된 생각 혹은 담론을 가진다. “나 혹은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묻고 답하기의 놀이로서의 기원적 서사들과 제의적 실천들이 발견되는 것이다. 문화의 가능성의 일차적 조건은 그 문화의 자기의식 혹은 자기담론이며, 여기서 나(혹은 우리)는 우선 닫힌 계(界)로서의 “하나”이다.
다른 문화나 민족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문화에서조차도 “나(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추구가 발견된다. 문화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른 동물이나 사물들과 자신(인간)들 사이의 분별이 필요하기 때문이며 이것은 언어의 발생과 동시적인 현상인 것 같다. 차이의 인식과 분별의 논리가 작동하지 않으면 정체성의 담론이 구성될 수 없으며 어떠한 정신적 문화도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나(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자기의식의 담론은 타자들의 세계, 즉 자기문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담론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식 혹은 자기담론은 세계의식과 타자에 대한 담론을 수반한다. “하나”인 동일자와 타자들의 세계, 이 대립적 “둘”(兩者)이 문화적 세계인식의 기본 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마니교적인 선/악의 대립, 동양적인 음/양의 상보적 질서,  형이상학적 주/객관의 병존, 구조주의 인류학이 발굴해낸 문명의 이항대립적 심층 구조들(날 것과 익힌 것, 순수한 것과 오염된 것 등등)은 모두 이 이원론적 세계를 표상하고 있다.

1-3. 이제 마지막으로 자기와 세계라는 이분법적 분별을 넘어서서 존재하거나 이 둘의 분리를 연결시킴으로써 (재)통합하는 어떤 것(존재질서)에 대한 담론 혹은 의식이 나타난다. 그것은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통합적이고 절대적인 일자(一者, oneness)에 대한 의식이다. 투박하게 뭉뚱그리는 것이 용납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신(神), 부처, 도(道), 로고스와 진리 등등이 모두 이 일자의 다른 이름들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3항은 심오한 정신문화로의 도약을 가름하는 시험대이며 스스로를 보다 세련되고 복잡한 체계와 질서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의 여부가 결정되는 지점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와 세계의 분리에 대한 인지는 미약하나마 인간 이외의 동물들에게서도 나타나지만 자기와 세계를 연결하는 어떤 질서에 대한 의식적 앎의 추구는 인간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화의 제3항은 각 문화마다 그 양태가 다르게 나타나며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차원에 규정적인 영향을 끼침으로써 각 문화의 성격을 결정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 제3항에는 그 문화를 사는 민족들의 고유한 상상력과 삶의 문법이 드러난다. 문화적 인간 즉, 세계 속에서의 의미 있는 삶은 제3항에 의해 주조되고 인도된다.
문화의 정신적 근간을 형성하는 세 정신적 차원은 “나, 너, 우리” 혹은 “우리들, 당신들, 그 분”― 동일자, 타자, 절대적 초월자―로 번역될 수도 있고 나와 너로 이루어지는 감각적 차안의 세계(내재성의 논리)와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피안의 세계(외재성의 논리) 그리고 양자를 결합하는 하나의 세계(초월성 혹은 총체성의 논리)로 나뉘어 이해될 수도 있을 듯 싶다.

2. “一者”의 자기모순
―문화의 비극성과 변증법 논리

2-1. 우선 우리는 문화의 제3항이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 모순에 대해 알아야 한다. 제3항에서 나와 세계, 나와 타자를 이어주는 일자에 대한 담론은 고유의 모순, 즉 논리적 딜레마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일자가 초월적이면서 동시에 내재적이어야 하고, 일자에 대한 담론이 나(우리)에 의해 나(우리)의 언어로 말해지지만 본질적으로 나(우리)와 언어, 그리고 이름지음(名)의 질서를 넘어서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일자와 타자를 하나로 이어주는 절대적 일자의 영원한 평화와 인간실존의 이항대립적 현재조건 사이에는 깊은 심연, 분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저 유명한 첫 구절―"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은 바로 이러한 정신문화의 딜레마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인식, 절대적 초월자에 대한 유한자(the mortals)들의 한계인식은 그리스 비극의 기본 음조이기도 하다.
이 간극을 메우고 분열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 구성되는 모든 정신의 문화의 항구적 과제이며 동시에 그 본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문제설정(problematic)을 하나의 역사적 예술장르로서의 비극(tragedy)이 아니라 문화의 보편적 조건으로서의 비극성(the tragic)이라는 차원에서 다루어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문예이론가 장파는 동양에는 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설을 일단 수용하면서도 문화의 비극성이라는 보다 보편적 차원에서 동양과 서양문화의 비교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한 바 있다. (장파, 159~60쪽 참조)

2-2. 각 문화는 이 비극성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여러 방식들을 창안했지만 가장 오래되고 널리 발견되는 것은 신화, 제의, 종교 등 절대적 믿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었다. 구약이나 십계명처럼 발화자의 외재성을 무조건 전제하는 것이다. 가령 아래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내재적이고 “허구적인” 세계인식와 초월적이며 “진정한” 세계인식 사이의 절대적 불연속성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을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던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성경; 고린도 전서?? 13장. 강조―인용자)

여기에는 ‘절대자가 주재하는 하나의 세계와 온전한 앎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은 자신의 동일성과 부분적 앎을 “무조건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정언명령이 들어있다. 논리적 추론이나 반성적 사유가 아니라 절대적 믿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단 이 믿음은 개별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달리 말해서 이 집단적 믿음은 “권력”이라는 이름의 강제적 집단질서, 집합의지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믿고 말고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없다. 그 문화공동체를 일탈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 믿음의 수용은 불가피한 것이며 그 불가피성이 띠게되는 운명적 성격이야말로 “일자”가 가지는 초월적 절대성의 요체이다.

2-3. 그러나 이 모순을 집단적 믿음의 힘에 의존해 해결 혹은 은폐하는 신화와 종교와 달리 개인들의 사유와 통찰에 기대어 이 딜레마를 극복하는 다른 방식들이 존재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를 “믿음의 논리”와 대비하여 “변증법의 논리”로 불러볼 수 있을 것이다.
변증법(dialectics)은 그 어원에서 드러나듯이 대화의 기술이지 연설이나 설교는 아니다. 이는 공통의 주제에 대해 서로 대립되거나 다른 두 의견들이 더 나은 상위의 해결책으로 전진하는 방식이다. 변증법이 믿음에 기대지 않고 일자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신앙과 달리 모순을 부인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자신의 고유한 논리로 변화시킨다는 데 있다.
우리는 믿음에 의한 일자에 드러남에 대해 따져 묻거나 분석할 수 없다. 다만 믿거나 외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변증법에 기댄 일자의 현상들은 이런 논의에 열려있다. 이 글은 바로 이 제3항의 딜레마, 문화의 비극성이 동양과 서양에서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가를 헤겔과 장자의 변증법을 통해 비교해보려는 시도이다.

3. 헤겔과 “하나”에 이르는 형이상학적 변증법의 길

3-1. 헤겔은 철학의 고유한 과업이 나와 타자, 나와 세계 사이의 끊어져버린 조화를 회복하는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철학의 힘이 증명되는 장(場)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철학을 지탱하는 특수한 형식을 자세히 바라보면, 우리는 그 철학이 한편으로는 갈기갈기 찢겨져버린 조화를 철학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가꾸어나가고 또 자발적으로 형성해나가는 생동한 정신의 독창성으로부터 발생하였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 철학이 체계를 생겨나게 하는 단초로서의 분열을 걸머지고 있는 특수한 형식으로부터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분열이야말로 철학적 욕구의 원천으로서 이것을 다시 시대문명으로 조명해본다면 부자연스럽게 부과된 형태의 측면이 되겠다.(피히테와 셸링철학 체계의 차이: 21~2쪽.)

헤겔은 인간의 생활로부터 “통합의 힘”(Macht der Vereinigung)이 사라지는 때, 동시에 모든 대립이 그의 “생동한 관계와 교호작용을 상실하여 저마다의 자립성을 획득하게 될 때”를 철학개시 시점으로 잡고있으며, 이 상실된 “총체성을 회복하려는 욕구”야말로 철학을 추동하는 힘이라고 부른다.(피히테와 셸링철학 체계의 차이: 29쪽.) 이 “하나에의 욕구”는, 그러나 최초의 총체성이 깨어지면서 나타난 주관의 자립성을 맹목적 신앙의 재단에 양도하지 않음으로써 철학이 된 것이기에 즉자적 객관의 근원적 동일성으로 되돌아감이 아니라 “새로운 하나”로 나아감이라는 목적의식적 운동의 형식을 띠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문에 헤겔에게서 "운동"이나 “노동”으로 표현되는 “함/됨(爲)”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된다. 헤겔의 “하나”는 언제나 “하나 됨(爲一)의 과정” 속에서만 진정한 하나인데, 이런 역설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진정한 힘의 원천이 된다. 앞서의 논의구도를 이어본다면, 철학이란 문화의 비극성을 지양하는 과정(으로서의 역사를 대자적으로 이해하여 완성하는 정신의 작업)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양(止揚, Aufheben), 즉 보존하고 고양시키고 동시에 폐기시키는 작업은 어떻게 가능한가?

3-2.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정신(Geist)의 자기 외화(外化) 논리로서의 자연적 의식이 자기 부정을 통해 발전해 가는 길의 이치를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적 의식의 자기 부정에 의한 발전의 논리가 이른바 <정신현상학>에서의 변증법이다. <정신현상학>의 변증법은 일자로서의 존재가 다시 일자로 돌아가는 길이다.

결국 생동한 실체란 오직 주체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이 말을 바꾸어보면 생동한 실체란 오직 그가 자기 자신을 정립하는 운동이거나 또는 바로 자기 자신을 통한 자기의 타자화를 가능케 하는 매개를 의미하는 한에서만 참으로 구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 무관심한 차이와 이렇게 빚어진 대립을 또다시 부정하는 대립적인 이중작용…결국 이와 같은 자기회복을 위한 동등성 혹은 타재성(他在性) 속에서 내적인 자기반성을 하는 것―즉, 원천적인 통일로 간주될 수도 또한 직접적인 통일 그 자체일 수도 없는―이야말로 참다운 진리인 것이다. 진리란 곧 자기 자신의 생성이며 또한 스스로 다다르게 될 종말을 다름 아닌 자신의 목적으로 전제하면서 동시에 이를 시원(始原)으로 삼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것은 구체적 전개를 거치고 난 종말에 가서야 비로소 현실적일 수 있는 원(圓)과 같은 것이다. (정신 현상학: 75~6쪽.―강조 인용자)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형식논리는 “A는 A이다”(동일률), “A는 ~A가 아니며, A이면서 동시에 ~A일 수 없다”(모순율), “A와 ~A 사이에 제3자는 없다”(배중율)라는 3대 원칙을 핵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는 이 세 가지 원칙를 전제하면서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 즉 “A가 A이면서 ~A이며, A와 ~A로부터 제3항의 B를 산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증법은 어떻게 가능한가? 헤겔은 언어의 형식성에 얽매인 고정된 사유의 질서에 시간과 운동의 차원을 개입시킨다.

철학이 학(學)의 단계로 올라가는데는 반드시 시간의 계기적 흐름이 있어야만 하는 것, 바로 이 점을 명백히 밝히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우리의 시도를 참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의 흐름만이 오직 이상과 같은 목적(일자를 다시 필연성 있는 전체로 체계화하는 것―인용자)의 필연성을 드러내주기도 하면 동시에 그 목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 63~4쪽.)

“만물은 유전(流轉)한다”와 “로고스는 변하지 않는 만물의 실체이다”라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순적 주장을 공히 진지하게 받아들인 헤겔은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실체인 개별적 자아들에게 “자신은 자신이 아님”을 받아들이라고 교설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달리 말해, 변증법적 이성은 유전하는 로고스이다)
헤겔에게 자기의식은 하나의 실체 속에 들어있는 두 가지 양상(two-in-one)이다. “나는 내가 나임을 안다”는 동일성의 인식이야말로 그가 동일자가 아니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는 벌써 동일한 자기를 아는 측과 알려지는 측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의식의 상태는 헤겔의 논의 속에서 “동일과 비(非)동일의 동일(an identity of identity and difference)”로 가장 잘 표현될 수 있다. 여기서 양자를 포괄하는 동일성은 새로운 차원의 동일성으로 비(非)동일과의 대립 하에 놓여있는 하위의 동일성과는 다른 무엇이다. 말하자면 이 과정은 배중율을 위반하는 운동, 생성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의식은 아직 구체적 실체로서의 타자들에 다가가지 못하고 자기 속에 갇혀 있다. 이것이 극복되기 위해서는 “자기가 자기 아님”을 아는 동시에 “타자가 타자 아님, 즉 타자에게 자신의 계기가 들어있음”을 경험해야 한다.

결국 의식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총체적으로, 즉 자기의 지와 함께 또한 자기의 대상에 대해서도 변증법적 운동을 지향해나간다고 하겠으니, 이렇듯 의식에게 이러한 운동을 통한 새롭고도 진정한 대상이 발생한다는 의미에서 바로 이것은 경험(Erfahrung)이라 불리는 것이다. (정신현상학: 87쪽.)

이런 생성적 반성과정을 통해 자기의식은 종국에 “이성”이라는 새로운 차원에 들어서게 되는데, 헤겔은 “이성이란 곧 자기 자신이 모든 것의 실재라는 데 대해서 의식이 지니게된 확신을 의미한다.” (정신현상학: 311쪽.)고 말한다.
헤겔은 의식이 마침내 “현상과 본질이 동일화되는 단계”, 의식자체가 자기의 본질인 절대지(絶代知)로 귀일 하는 과정을 “세계사의 노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해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 정신의 원환적 과정은 “빠짐없이 자신의 필연성 속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종국에 그 절대적 체계의 인식에 도달하면 왠지 변증법의 기원적 속성인 인간주의와 대화정신, 무엇보다 개방적인 자유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겔은 혹시 더이상 믿음이 필요하지 않은 종교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이 절대적 일자는 아름답지 못하고, 너무 숨막히는 “하나의 세계”를 조성하는 것은 아닐까? 이 역사의 노동 속에서 “나”라는 피와 살을 지닌 구체적 인간실존의 자리와 가치는 인정될 수 있을까? 헤겔은 진정 문화의 비극성을 초월하여 일자와 더불어 사는 길을 깨우쳐주는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예술에 대한 헤겔의 언급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예술은 여전히 정신을 담고있는 인간의 육체와 감성, 즉 구체적 인간실존의 활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3-3. 헤겔은 “삶과 의식의 이분성”이라는 문화의 비극적 문제설정에 대한 지양의 시도가 예술에 의해 시도된 것으로 보고있다. 예술은 철학, 종교와 더불어, 신적인 것(das Gottliche) 즉 인간의 가장 깊은 관심사이자 정신의 가장 포괄적인 진리들을 의식하고 언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헤겔은 “예술작품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예술은 감각적인 예술의 형상화(Kunstgestaltaltung)를 통해서 진리를 드러내고 화해된 대립들을 표현하는 소명(召命)을 지니며 따라서 예술은 자신 속에, 그리고 예술이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Enth?llung) 자체 속에 궁극적인 목적을 갖는다. (미학강의Ⅰ, 100쪽.)

헤겔에 따르면 예술을 발생시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욕구는, 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인간이 사유하는 의식존재(denkendes Bewußtsein)라는 사실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미학강의Ⅰ, 69쪽), 철학과 예술은 각각 사변(思辨)과 감각적 형상화라는 상이한 길을 통해 주관과 객관의 대립, 보편적인 것이 특수한 것의 대립, 정신과 육체 혹은 정신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의 투쟁 결국 “삶과 의식의 이분성”의 대립을 지양하는 하나의 목표에 도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립들 가운데 어느 하나도 추상적이거나 일면성 속에 머무는 가운데서는 진리를 내포할 수 없으며 스스로 해체된다는 점, 그리고 진리는 바로 대립되는 양자를 화해시키고 중재하는데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중재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이행되고 끊임없이 자신을 완성시켜나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통찰은 바로 이 대립의 해체를 줄곧 표상하고 이를 행동 속에 목표로 삼고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믿음과 의지에 따라 이행하는 것이다. 철학은 그러한 대립의 해체 속에서만 진실이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도 대립과 대립의 측면들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화해하는 방식을 보여줄 때만 대립의 본질에 대해 사유적으로 통찰할 수 있게 된다.(미학강의Ⅰ, 99쪽―강조 인용자)

이것이 궁극적이고 실체적인 목적에 관해 헤겔이 철학에 부여한 입지이며, 또한 동시에 예술이 그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복해야할 내재적 입지이다. 그러나 헤겔이 철학과 예술에 동일한 목적을 제시했다고 해서 이 둘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했던 것은 아니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철학 이전”의 기도로 남는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사상과 반성이 예술을 능가하고 있으며, 예술은 과거적인 것이 되었다”(미학강의Ⅰ, 36쪽)는 예술의 종말에 대한 헤겔의 유명한 테제이다.

3-4. 그러나 예술의 종말, 나아가 역사의 종언에 관한 헤겔의 주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 예술이 그것이 여전히 예술이기 위해서 감각적 형상화를 포기할 수 없듯이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여전히 그의 육체와 언어를 모두 포기할 수 없다면, 예술의 종언은 곧 육체를 가진 인간의 종언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의 종언 이후에도 인간이 아직 인간일 수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언어적 인간, 즉 로고스(Logos)로서의 인간일 것이다. 실제로 헤겔은 육체와 욕망을 가진 개별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성의 실현태로서의 국가에서 일자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는 것 같다.
 
즉자대자적인 국가는 인륜적 전체이며 자유의 실현으로서 이렇듯 자유가 현실화된다는 것은 곧 이성의 절대적 목적이기도 하다. 국가란 세계 속에 자리잡고 그 속에서 의식의 힘으로 스스로가 실현되는 정신이기도 하지만 이와는 달리 자연 속에서는 이 정신이 오직 자기의 타자로서, 즉 잠들어있는 정신으로서 실현되어있는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정신은 오직 의식 안에 현존하는 것, 그리고 자기 자신을 실존적 대상으로 깨우치는 것으로서의 다름 아닌 국가이다. (…) 결국 국가의 존재란 세계 내에서의 신의 발자취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또한 이 국가의 근원은 자신을 의지로서 실현시키는 이성의 힘인 것이다. (법철학: 392~3쪽.)

우리가 인간인 채로 즉자대자적인 절대정신의 입지에 설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를 “국가”와 동일시할 수 있을 때라고 헤겔은 진지하게 믿었던 것일까? 이것이 헤겔 철학체계의 진정한 결론인지 아니면, 단지 헤겔이 당대의 권력에 대해 취한 일종의 정치적 타협의 제스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헤겔의 철학체계가 여전히 자기모순에 빠져있으며 이를 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예술작품 속에서 정신의 전개를 파지하는 헤겔의 논리에는 여전히 안과 밖,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실체 사이의 위계적 이분법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헤겔의 논의는 여전히 문화적 비극성의 구도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길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우리는 예술작품을 대할 때 일단 우리에게 직접 제시된 상태를 보고 그 다음 단계에서 비로소 그 작품의 내용과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 외적으로 제시된 것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내적인 것, 즉 외적인 현상에 혼을 불어넣는(begeistern) 뭔가 의미 있는 것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러므로 외면적으로 드러난 예술작품은 이처럼 그 속에 든 혼(die seele)을 암시(hindeuten)한다. 사실상 모든 낱말들은 어떤 의미에서 지시하는 낱말 그 자체에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눈이나 얼굴, 살갗, 그리고 전체 모습은 바로 그것들을 통해서 인간의 정신과 영혼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의미란 항상 직접적인 현상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다. (미학강의Ⅰ, 54쪽 참조)

의미가 외면적인 것과 내면적인 것 사이의 간극에서 산출된다는 이 심오한 통찰에 따른다면, 육체성이라는 외면을 상실한 언어, 즉 순수한 정신과 내적인 혼은 표상할 수 없는 언어여야 할 것이며, 헤겔의 담론이 여전히 인간의 언어로 구성된 것이라면, 예술의 종언 이후의 그의 철학적 사유는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 또한 외면적 현상과 내적인 혼(신적인 것)의 통일이 실재로 나타난다면, 이 “마지막 화해” 앞에서 알파벳으로 쓰여진 헤겔의 담론은 거짓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며, 이와 반대로 헤겔의 담론이 유의미성(진리성)을 띠는 동안 "마지막 화해"라는 즉자대자적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고도(Godot)로서 끊임없이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참고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

헤겔은 존재에서 출발해 존재로 나아가고 다시 존재로 돌아온다. 그에게 무(無)는 존재의 원초적 양태, 자기를 모르는 즉자적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 다시 돌아본다면, 즉자적 외면성 혹은 무(無)가 없다면 헤겔의 담론은 그 유의미성을 산출하게될 토양을 잃게 되며, 우리는 그의 체계 담론의 진리성을 판가름할 아무런 근거나 정당성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일자를 찾아 나선 헤겔의 변증법적 도정은 세계전체로 확대된 자기, 자기 안으로 들어온 세계를 완벽하게 실현하지만, 그토록 성공적인 체계의 구축으로 인해서 다시 비극적 딜레마를 재연(再演)하는 것이다. 그러나 헤겔의 정신적 노동 전체가 보여주는 이 장대한 비극적 딜레마는 그리스 비극이 지녔던 미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서구적”이다. 그리스 비극의 효과는 인간 공동체의 실존적 한계를 체험케 함으로써 그 존재의 조건의 절대성과 상대성에 대한 통찰을 불러일으키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은 폴리스의 울타리(limits) 안쪽이면서 동시에 그 너머인 곳, 즉 극단적인 것들이 서로 부딪히고 뒤섞이며, 모든 규정들(definitions)이 불분명해지고, 인간들이 구축한 제도의 질서정연함이 모호해지는 경계선(the borders)에서 작동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비극적 영웅의 고난을 통하여 가장 특출한, 바로 그 때문에 가장 모호한 어떤 인간속성의 고귀함과 연약함을 다시 한번 새로이 발견하고 경험하게 된다. (Charles Segal, 43p.)

그런 면에서 독일 관념철학의 영웅인 헤겔의 정신노동이 끝내 노정한 비극성은 그의 과오가 아니라 서구의 형이상학 정신의 숭고한 축제였는지 모른다.
 

4. 莊子와 “하나”를 사는 예술적 변증법의 길

“지식(knowledge)에는 외적인 것이, 성찰(reflection)에는 내적인 것이 빠져있기 때문에 이 둘 모두에게 있어서 전체적인 것은 더불어 말해질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학문(science)에서 전체성을 기대한다면, 학문을 필연적으로 예술로서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학문은 일반적인 것이나 한계를 넘어선 것에서 추구될 것이 아니라, 예술이란 늘 개개의 예술작품들 속에서만 완전하게 구현되는 것이기에,
학문도 역시 그것이 다루고 있는 모든 개별적인 대상 속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구현할 수 있어야만 한다.”
―J.W von Goethe, W. Benjamin, 독일 비애극의 기원에서 재인용.(M. Jay: 247쪽)

4-1. 헤겔의 치밀한 체계에 비한다면, 장자의 변증법 논리는 허술하고 어리숙해 보인다. 헤겔이 갈갈이 찢겨진 나와 세계의 총체성을 다시 꿰어 매는 놀라운 힘과 의지의 철학을 선보이는데 반해, 하나를 찾는 장자의 변증법은 시작부터 맥이 빠진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으나 앎에는 끝이 없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으니 오직 위태로울 뿐이다. (吾生也有涯 而知也無涯 以有涯隨無涯, 殆已) (장자: 양생주)

학적 체계 속에 절대적 일자를 담아보고자 했던 헤겔이 듣는다면 “미숙하고 나약한 정신”이라고 비웃어버렸을 이 말은, 장자의 길이 헤겔의 길과는 사뭇 다르리라는 것을 암시해준다. 아니나다를까 나와 타자들의 세계를 잇는, 장자의 오묘한 “하나”는 너무나도 싱거운 방식으로, 대뜸 제시된다.
“천지와 내가 함께 태어났다. 천지와 내가 함께 산다.(天地與我竝生 而萬物與我爲一) 천지 없이 나는 없다. 나 없이 천지는 없다. 내가 있으므로 천지가 있고 천지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 그렇다면 나와 천지의 구분은 나의 오만이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아니 장자는 너와 나, 나와 또 다른 나들로 갈갈이 찢겨진 세계를 보지 못한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장자의 시대는 헤겔의 19세기보다 훨씬 참혹해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사람이 사람을 뜯어먹는 끔직한 얘기가 나올 정도다. (도척편 참조.) 이 난세의 철학자 또한 “하나(眞宰)”를 찾는 마음의 열렬함이 헤겔 못지 않다.

희노애락이 있다. 근심하여 탄식하고 겁이 있어 변덕스럽다. 요염하고 방탕하고 솔직함과 꾸밈이 있다. 음악은 빈곳에서 나오고 습기는 곰팡이를 만든다. 밤낮으로 서로 바뀌어 나타나지만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 수가 없다. 두어라, 두어라. 아침저녁으로 이를 보게됨은 그 어떤 근원이 있어서다. 그 근원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없으면 그것들을 취할 수도 없다. 매우 밀접하건만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 참된 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그 근원을 찾을 수 없다. (…) 참된 주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것이 참인 것에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喜怒哀樂,慮嘆變?,姚佚啓態.,樂出虛,蒸成菌. 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 已乎,已乎! 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是亦近矣,而不知所爲使. 若有眞宰,而特不得其?. 其有眞君存焉 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眞. (장자: 제물론)

그러나 모순을 수용하는 장자의 태도는 헤겔과는 크게 다르다. 장자는, 놀랍게도 모순과 “하나”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려든다. 

만물에는 저것이 아닌 것이 없고 이것이 아닌 것이 없다. 저편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자기가 보면 안다. 이것이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은 또 저것에 원인이 있다>는 피시방생설이다. 그러나 태어난 것은 죽게되고 죽는 것은 태어나게 된다. 가한 것은 불가하게 되고 불가한 것은 가하게 된다. 옳은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 그른 것에 의지하게 되고 그른 것에 의지한다는 것이 옳은 것에 의지하게 된다. 그럼으로 성인은 의지함이 없이 하늘에 비추어본다. 이러한 것도 역시 의지하는 것이기는 하나 이것은 또한 저것이요 저것은 또한 이것이 되는 경지이다. 마찬가지로 저것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며, 이것 또한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그러나 저것과 이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아니면 저것과 이것은 없는가. 저것과 이것의 짝이 없는 경지를 도추라 한다. 지도리는 고리 한가운데 걸려 무한히 회전하게 된다. 옳은 것도 무궁의 일부분에 불과하고 그른 것도 무궁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지혜에 따르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物无非彼, 物无非是. 自彼則不見, 自是則知之. 故曰彼出於是, 是亦因彼. 彼是方生之說也, 雖然, 方生方死, 方死方生., 方可方不可. 因是因非, 因非因是. 是以聖人不由, 而照之於天 ,亦因是也. 是亦彼也, 彼亦是也. 彼亦一是非, 此亦一是非. 果且有彼是乎哉 果且无彼是乎哉 彼是莫得其偶, 謂之道樞. 樞始得其環中, 以應无窮. 是亦一无窮, 非亦一无窮也. 故曰莫若以明. (장자: 제물론)

장자가 도추(道樞)라고 부르는 이 경지는 도대체 무엇일까? 장자는 말한다. “무릇 도란 처음부터 한계가 없으나 말은 애당초 일정함이 없다. 도를 나타내려함으로 한계를 두게된다.夫道未始有封, 言未始有常, 爲是而有畛也”(제물론) 그렇다면 하나의 길은 이미 무한하고 무궁하게 펼쳐있는데 다만 우리의 의식과 언어가 이를 담지 못해 어리석은 놀이를 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말로 피차(彼此)를 나누고 감정으로 시비(是非)를 가리는 것이 인간의 불가피한 조건을 장자는 조삼모사(朝三暮四)의 말장난에 울고 웃는 원숭이에 빗댄 후 이렇게 말한다.

이름과 실재에 아무런 달라짐도 없는데 어떤 때는 기뻐하고 어떤 때는 성을 내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역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묶여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른 것의 구별을 세우지 않고 하늘의 균형에 몸을 맡긴다. 이를 양행이라 한다.
名實未虧而喜怒爲用, 亦因是也. 是以聖人和之以是非而休乎天釣, 是之謂兩行. (장자: 제물론)

“하나”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를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 담담한 어투를, 하나를 찾거나 혹은 만들어 가는 철학자의 과업에 대해 말할 때의 비장한 헤겔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이성을 현재라는 십자가 위에 드리워진 장미로 인식하는 가운데 이 현재 속에서 기꺼워한다는 것, 바로 이러한 이성적 통찰이야말로 현실과의 유화(宥和), 화해를 뜻하거니와 결국 철학은 개념적으로 파악하면서도 또한 실체적인 것 속에서 주관적 자유를 유지하는 가운데 결코 특수적이거나 우연적인 것이 아닌 즉자대자적인 것 속에서 그의 주관적 자유를 간직하고자 하는 내적인 요구를 어떻게든 싹터오르게 하려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현실성과의 유화, 화해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법철학: 34쪽.)

의식, 자기의식, 이성에 이르는 헤겔의 길이 “비장한 즐거움”으로 표현된다면, 하나를 사는 장자의 길은 “담담한 슬픔” 위에 과장된 웃음과 유머가 섞여든다. 장자에게, 하나를 사는 길은 상호인정을 위한 투쟁과 매개를 통한 화해는 아닌 듯하다. 장자에게서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인간 삶의 조건이 절대지 속에서 무효화되는 그런 역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인간은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4-2. 우리는 말로 거짓을 행한다. 진위판단 이전에 거짓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심오한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거짓과 사기들은 대부분 말로써 이루어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떠올려보는 것으로 족하다. 거짓은 언제나 거짓말과 결부되어있다. 사실이나 행위 자체는 거짓을 모른다. 어찌 보면 말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거짓이다. “나무”라는 말은 나무가 아니며 “개”라는 말은 개가 아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말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사나운 개에 쫓긴 한 인간이 나무위로 도망쳤다”는 말로 우리는 한 사건을 매우 실감나게 전달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개도 나무도 인간도 보이지 않는 방 안에서도 말이다.) 구체적인 것을 지칭하는 명사들이 이러할 진데, 신, 진리, 道, 용기, 사랑 따위의 고매한 추상명사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언어와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착각으로서의 사고체계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과 후자에 대한 일방적 혐오는 정당한 것이 아니다. 침묵과 고요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도승의 직관조차 언어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깨달음으로 가는 길목에 화두(話頭)를 놓아두는 선불교의 오랜 수행법을 떠올려 보라. 게다가 중생의 삶은 언어로 점철되어있다. 우리 중 대다수는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일생을 마감한다. 기껏 그 감옥이 좀더 실재 세계와 통풍이 잘 되도록 개수(改修)할 수 있을 뿐이다. 만약 우리가 인간이 길러낸 문화 전체를 거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언어는 거대한 거짓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거짓이기도 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면, 사실 언어 자체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언어는 약속의 체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무”라는 말로 개를, “개”라는 말로 인간을, “인간”이라는 말로 나무를 지칭하려든다면 그는 대단한 곤경에 빠질 것이 틀림없다. (“사나운 나무에 쫓긴 개 한 마리가 인간 위로 기어올라갔다”) 만약 한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절반이 이런 식의 혼동을 일으킨다면 그 사회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바벨의 언어에 관한 성경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를 불문하고 진실이다. 인간의 오만으로 쌓아올린 거대한 탑을 붕괴시키기 위해 신은 굳이 번개를 내리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언어를 혼동시킴으로써 탑은 무너져 내렸을 테니 말이다. 왜냐하면 탑은 돌과 쇠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과 언어로 쌓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약속의 진실성이 사라지면 그 사회는 망한다. 언어는 모든 사유와 지식, 사회적 행위가 그것에 기대고 있는 가장 진실하고 강력한 준거의 틀이자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거짓말은 인간의 문제일 뿐 언어 자체는 대단히 정직한 도구라고 해야할 것인가? 언어는 어떻게 가장 거대한 거짓이면서 동시에 가장 분명한 진실인가?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아이들의 심정이 되어보자. 아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굴뚝을 타고 그들에게 장난감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장난감은 바로 자기 아버지에 의해 거기에 놓여진 것임을 안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것인가? 물론이다. 이것은 하나의 놀이이고 아이들에 무구한 마음은 거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믿는 체하기(make-believe), 알면서 속기, 거짓을 진실 되게 믿기로서의 놀이 말이다. 이러한 “놀이성”이야말로 문화의 비극성에 대처하는, 그러면서도 인간실존의 모순성을 포용하는 예술의 변증법적 전략이다.

4-3. 하나의 문화가 하나의 언어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라면, 언어야말로 인간이 가장 크게 벌여놓은 놀이판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 놀이판은 그 자체로 거짓도 진실도 아니다. 단지 거짓과 진실이 엎치락 뒤치락하는 조건으로서의 놀이일 뿐이다. 거짓과 진실은 언어로 이루어진 인간문명이라는 이 거대한 놀이 위에 절대적 실체로 존재할 수가 없다. 허구를 믿는 일과 현실을 사는 일 사이의 거리는 우리의 지레짐작과 달리 그리 멀지 않고 그 경계는 우리의 믿음과 달리 절대적이지도 않다. 나는 장자가 말하는 양행(종합이라는 결말의 표상이 부재하는 변증법적 과정) 혹은 도추의 마음가짐을 세속을 버린 도인의 길이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진지한 놀이이며 이 놀이는 인간들의 것만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분명 그 몫이 돌아가야할 우주의 놀이이다.

4-4. <장자>의 제물론(齊物論)편 마지막 단락에는 “장주의 나비 꿈”(胡蝶之夢)으로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 천년이 넘는 시간의 무게를 이겨온 이 놀라운 우화의 전문은 아주 짧다. 하지만 그 깊이는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만하다.

어느 날 장주는 꿈에 나비가 되었다. 훨훨 춤추는 한 마리의 나비였다. 즐겁고 마음에 맞아 자기가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잠에서 깨어보니 자기는 틀림없이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로 된 것이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로 된 것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명백한 구분이 있다. 이것을 만물의 변형이라고 이른다.
昔者莊周夢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不知周也. 俄然覺,則??然周也. 不知周之夢爲胡蝶,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장주는 정말 자기가 나비가 꾼 꿈의 주인공일지 모른다고 진지하게 믿었을까, 아니면 인생이란 그저 한편의 꿈에 불과하다는 염세주의적 한탄을 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우리는 <장자>를 사람으로 변한 나비가 한 이야기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진지한 놀이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자기를 잃어버린다는 것(忘我)은 그가 놀이 안에 있는(in play) 인간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진지한 놀이로서의 삶 속에서 새로운 하나로서의 세계가 형성된다. 놀이의 공간, 언어라는 진실/환상 속의 공간으로서의 인간세(人間世)... 바로 거기에서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며(非인간), 자연은 그저 자연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非자연). 이 하나를 사는 길은 그러나 무작정 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자신의 삶을 예술적으로 완성시킬 것을 요구한다. 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야말로 천균을 사는 자이며 양행의 질서를 실천하는 자이다. 오직 도에 통달한 사람만이 만물이 하나임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다고 인간의 언어적 한계를 벗어나 살수는 없다.

가한 것을 가하다 하고 불가한 것을 불가하다고 한다. 도는 움직임으로써 이루어지고, 만물은 이름붙임으로써 그렇다고 한다. 무엇을 그렇다고 하는가. 남들이 그렇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한다. 무엇을 그렇지 않다고 하는가. 남들이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지 않다고 한다. 만물은 본디 그렇다고 긍정할 것이 없고 만물은 본디 옳다고 인정할 것도 없다. 또한 만물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것도 없고 옳지 않다고 부정할 것도 없다.
可乎可 不可乎不可 道行之而成,物謂之而然. 有自也而可,有自也而不可. 有自也而然,有自也而不然. 惡乎然? 然於然. 惡乎不然? 不然於不然. 惡乎可? 可於可. 惡乎不可? 不可於不可. 物固有所然 ,物固有所可. 無物不然,無物不可. (장자: 제물론)

삶의 매 사건 속에 몰입하는 것, 매 순간을 즐거움과 아름다움으로 완성해 가는 것, 다시 말해 놀이로 사는 것, 환영과 더불어 허구를 가지고 “놀며 사는 것” 이것이 장자의 비전인 무위를 함(爲無爲)이 아닐까. 역사에 대한 실천이 아니라 역사 속의 실천, 텔로스 없는 실천 아니 실천 자체가 텔로스인 무목적의 목적, 천진무구한 놀이에로의 몰입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 헤겔이 비판했던 칸트와 낭만주의의 미학적 강령들에 근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거기에는 헤겔이 그토록 혐오했던 주관성의 아이러니가 존재하지 않는다. 장자에게서 낭만적 아이러니의 예술형식인 “병적인 아름다운 영원성(Schanseelischkeit)”이나 “동경(Sehnsuchtigkeit)”따위를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다.

<장자>에서 우리가 보게되는 것은 문화의 근원적 비극성을 저항하며 이를 넘어서려다 파멸하는 외디푸스적 인간의 의지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극”의 부재는 문화의 비극성에 대한 통찰의 부재가 아니다. 다만 그것을 우회하며 이를 미학적인 방식으로 살아내려는 어떤 미학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태도, 헤겔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변증법적 지양-―모순을 감내하며 이를 넘어서는-―일 뿐이다.


인용문헌

G.W.F. 헤겔, 임석진 옮김, 피히테와 셸링철학체계의 차이 (지식산업사, 1989)
                        ,법철학 (지식산업사, 1989)
                        , 정신현상학Ⅰ,Ⅱ (지식산업사, 1988)
                        ,헤겔 美學 Ⅰ―美의 세계 속으로 (나남, 1996)
老子, 道德經
莊周, 莊子
장파, 유중하 외 옮김,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 (푸른숲, 2000)
Charles Segal, Tragedy and Civilization: An Interpretation of Sophocles (Harvard Univ. Press, 1981)
Martin Jay, Marxism and Totality: The Adventure of a Concept from Lucacs to Haberma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4)

*비교문학 박사과정 세미나 "동서비교문학"에 제출한 에세이. 아마도 2001년 쯤...
 그때는 허접하게 썼다고 자괴했는데, 이제 다시 보니 기특한 생각이 든다.
아 이 나르시시즘은 내 지성이 지난 몇 해 동안 급격히 노쇠했다는 신호가 아닐까,
아니면 같이 놀아줄 사람이 있는 어떤 지적 場을 잃어버려 외롭다는 증거일까. 

And

이야기의 존재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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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은 이야기다
--디지털/이야기/매체(The Digital/ Iyagi/ media)

디지털


디지털은 0과 1로 이루어진 세계이다. 예yes/아니오no, 통과go/멈춤stop, 깜/빡… 그러나 디지털은 0과 1의 이분법적 세계는 아니다. 흑과 백의 삭막한 추상공간이 아니다. 점멸(點滅)하는(깜/빡) 별들이 모여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무수한 별자리들을 이루듯이, 그 별자리들이 모여 무한한 우주의 그림(星座, constellation) 속으로 우리를 빨아들이듯이 디지털은 손끝에서 눈앞으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hyper-real) 세상을 가져와 펼쳐 보인다. 오늘날 디지털은 창(Window)이 아니라 눈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어떤 텔레비전 광고 카피가 우리를 대신해 고해성사 한다. “신이여, 용서하소서. 컴퓨터 화면에 눈을 빼앗겨버렸나이다.” 이것은 꿈인가, 새로운 현실인가? 허깨비인가, 허깨비 같은 또 하나의 실재인가?

무신론자에게 신은 허깨비이다. 신앙인에게 신은 현실보다 더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디지털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가? 신앙고백인가, 냉철한 회의주의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고작 0과 1의 이분법에 머물러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디지털의 디지털다움(the digital)에 대해서는 아직 사유를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별의 점멸 뒤에 무엇인가가 있다. 캄캄한 밤하늘이? 별자리의 전설과 성좌의 코스몰로지 앞에 혹은 그 이전에 무엇인가가 있다. 인간이? 기껏해야 점멸하는 두 숫자의 조합과 연산에 불과한 어떤 것(digital)이 하나의 거대하고 변화무쌍한 세계, 의미로 충만한 우주(the digital)가 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어떤 손―아니 손들이, 차라리 몸들이라고 해야할 어떤 것―의 신비로운 움직임이 있다. 진흙을 인간으로 변모시킨 조물주의 숨결 같은 힘,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라는 이름의 캄캄한 밤하늘이 아닐까? 이 캄캄한 밤하늘의 몸뚱이를 더듬어 그토록 깊은 인간의 침묵으로부터 무언가를 듣기 전에는 우리는 아직 디지털적인 것(the digital)에 말하지 못한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디지털적인 것, 보다 정확히 말해 의미로 충만한 디지털 세계로 만드는 것은 인간이라는 이름의 캄캄한 밤하늘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 깊은 어둠으로부터 인간과 디지털 세계의 비밀을 동시에 부각시켜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고 규정하는 형이상학적, 인간학적 공론들을 반복하고 되새김질할 것인가?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기술적 특성들과 이 특성들이 인간의 감각과 사회적 구성에 미치는 영향들을 샅샅이 조사해 거대한 목록을 작성할 것인가? 전혀 다른 뿌리에서 나왔고, 모르긴 해도 상이한 관심을 향해 자라고 있는 것 같은 이 두 작업을 무슨 수로 연결해볼 것인가? 우리는 차라리 “이야기”라는 화두, 혹은 나침반을 가지고 새로운 우회로를 개척해보려 한다.
“디지털은 이야기다!”
막연하고 선정적인 슬로건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믿음에서 우리는 출발한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인간이라는 이름의 이야기이며, 디지털 테크놀로지란 (다른 모든 테크놀로지와 마찬가지로) 이야기하는 사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것에게 말을 시키고 그것 또한 우리에게 말을 거는, 마법에 걸려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사물들 말이다. 이제 우리가 첫 번째로―그리고 마지막까지― 넘어야할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

“이야기Iyagi”가 무엇인지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비유컨대, 사정은 이러하다. 물고기만큼 물을 잘 아는 생물은 없다. 그러나 물고기는 물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물고기가 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듯, 그처럼 어렵게, 그만큼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고 말해보려 한다. (그런데 이것은, 벌써 또 하나의 이야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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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겨울 긴 밤 손자 손녀를 무릎에 앉히고 들려주는 것… 아득한 옛날, 까마득히 먼 나라, 가장 기이한 풍물과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의 삶을 화롯불 앞으로 가져다주는 것, 우리 모두가 어리던 날들과 어쩌면 인류의 유년기 전체를 지배한 상상력의 뼈와 살들… 그것을 우리는 “이야기”라고 부른다.
그 이야기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에게서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알고 있는가?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 핏줄의 계보 끄트머리에서 곰이나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놀라지는 말자. 이 거슬러 오름의 끝, 즉 시작이 필요하니까. 시작하기 위해서 끝이 필요하듯이,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원이 아니라 단지 이야기의 경제일 뿐이다. 혹은 그 이야기의 시작이 마을을 지나치던 이방인의 입일 수도 있고, 동구 밖을 떠도는 거지나 미치광이의 웃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바람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이처럼 이야기의 기원을 찾으려는 시도는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기원을 갖고있지 않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이야기의 기원을 알고 있다. 다만 더 이상 그것을 믿을 수 없을 뿐이다. 모든 이야기는 그 안에 자신의 기원을 담고 있다. 이야기의 기원은 이야기가 이야기하는 그것과 분리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하는 그 이야기들은 바로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또 이야기는 이야기가 이야기하는 것과 동근원적일 뿐만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과도 동근원적이다. 이야기의 기원은 우리 앞에서 이야기하는 바로 그 사람의 입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야기는 이야기하는 자와 이야기 듣는 자를 이야기가 전하는 세계 속으로 빨아들이는가 하면, 이야기 속의 세계를 세계라는 이야기 속으로 풀어놓는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 인간은 이야기하는 인간인가? 인간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다라고 이야기식으로 대꾸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이야기의 고고학이 왜 불가능한지 안다. 고고학―그것은 시간의 지층에 대한 분석이리라―이 할 수 있는 것은 이야기의 이야기다움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의 흔적과 요소들에 불과하다. 인체를 분해해 생명을 발견하지 못했듯이, 과거와 시간을 분해해 역사를 발견하지 못하듯이, 이야기를 분석하여 이야기다움의 진실을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독일인이 말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이야기Iyagi>란 에어쩰룽Erz?hlung이로군요. 발터 벤야민은 에어쩰러Erz?hler와 소설가를 비교하는 한 글에서 당신들이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의 역사와 운명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준 바 있지요. 사실 이야기하기(story-telling)의 전통이 없는 나라와 민족이 어디 있겠습니까? 역사(History)란 이미 하나의 이야기(Story)인걸요. 저는 당신들이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을 신화, 전설, 민담 등등을 묶어 부르는 총칭적 용어(generic term)로 이해합니다.” 물론 그렇다. 이야기란 스토리, 스토리-텔링이다. 하지만 이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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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내들이 우물가 빨래터에 모여서 늘어놓는 것이 빨랫감만은 아니었다. 시어머니에 대한 험담과 자식 자랑, 건너 마을 노처녀의 방탕한 행실에 대한 뒷말, 남편의 게으름에 대한 불평, 성생활? 임신?출산?육아 등 여자의 몸이 거쳐가는 특별한 경험에 대한 오래된 지식들, 살림살이를 추스리는 온갖 지혜들, 베갯머리에 나누었던 은밀한 속닥거림들까지…. 남정네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던지는 것도 화투장만은 아니었다. 농사일의 세목과 가축을 기르는 기술들, 과도한 소작료에 대한 불만, 나라의 정책과 관리들의 비리, 동네의 대소사, 집안을 다스리고 마누라를 즐겁게 하는 비결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어김없이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는 경험이 교환되고, 지식이 전달되고, 생활의 신산함이 풀려 나오고, 공동의 작업들이 계획되고 결정되는, 요컨대 크고 작은 모든 사회적 장(場)들을 형성하는 에테르 같은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윤리적이고 종교적이며, 그 모두에 앞서 일상적이고 구체적이다. 하여 때로 이야기의 그 일상성과 구체성이 정치와 경제, 종교와 윤리를 뒤섞고 뒤엎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야기의 일상적 편재성 다음에 이야기의 민중성과 이데올로기성 등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반하고 전복하는 욕망의 힘이며, 어느 순간 그렇게 웃자란 욕망의 가지들을 자르고 제한하는 형식 의지이기도 한, 바로 이야기의 생활력(生活力)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 우리는 신화나 전설, 민담 등 온갖 스토리-텔링과 허구(fiction)의 한적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의 공간에 머물고 있다. 사회가 개인과 집단의 행위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것들을 의미 있는 총체로 만드는 것은 항상 “이야기”이며, 이 커다란 이야기를 무수한 작은 파편들로 쪼개고 갈라치는 것 또한 “이야기들”이다. 세상은 “이야기”라는 소음―우렁차고 위협적인 것에서 거의 침묵에 가까운 미세한 것들에 이르기까지―으로 가득 차있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침묵조차도 이야기의 한 대목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치 단어와 단어를 분절하는 휴지(休止), 문장과 문장 사이의 띄어쓰기 공간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이런 “이야기들”을 거대한 혹은 작은 서사들(grand/small narratives)이라고 부르고싶은 유혹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다, 이야기란 내러티브, 이데올로기적 내러티브일 것이다. 바흐찐에서, 구조주의 서사이론, 리오따르와 푸코에 이르기까지 서사나 담론(discourse)에 관한 숱한 이론과 연구들은 “이야기”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관해 많은 조언과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내러티브나 담론과는 또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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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가 터져 울며 들어오는 아이를 보고 화들짝 놀란 어머니가 다그친다. “어쩌다 그랬는지 이야기해봐!” 아이가 삐죽이며 입을 연다. 코흘리개 아이의 이야기는 밑도 끝도 논리도 없다. 울먹임이 중간중간 끼어드는 이 하소연은 정황에서 또 다른 정황으로 제멋대로 건너뛰다 갑자기 끝나버린다. 아이는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애초의 놀람도 아픔도 잊어버리고 금새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가 엎어져 다친 것인지, 아랫마을 아이에게 맞은 것인지, 염소 뿔에 받힌 것인지 그 사정을 분간해낸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이의 입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꾀죄죄한 아이의 행색, 미묘한 표정들, 엉성한 손짓발짓도 말을 하고있다. 이 모든 유형 무형의 말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는 것이다.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은 이처럼 우리가 통상 언어라고 부른 것만이 아니다. 시각, 청각, 촉각, 그 외의 모든 지각들이 함께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이야기”가 오로지 언어적 사태로만 환원되어버릴 경우, “이야기”는 지휘자와 악보만 남은 오케스트라처럼 공허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어머니는 아이의 엉성한 이야기 사이사이로 자신의 이야기를 끼어 넣음으로써 이야기를 의미 있는 사건으로 완성시킨다. 어머니의 역할은 오케스트라의 관객 이상이다. 마치 판소리의 고수(鼓手)처럼, 달래고, 다그치고, 맞장구치며 아이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어머니는 단지 듣는 자가 아니라 또 하나의 화자(話者)인 셈이다. (사실 이야기 상황에서 우리가 단순히 청자(聽者), 청중이라고 잘못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야기는 언제나 주고받고, 오가는 중에 이루어지지 일방적으로 하달되거나 보고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아이가 행하고, 이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란 화행적 사건(speech-act)이고 복합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며, 그 이상이기도 하다. 왜 그 이상이라고 말하는가?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화행 이론이나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접근하기 힘든 영역으로 개방되어 있음을 알게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의 상황에서 두 개의 이야기가 합류하는 것을 보았다. 아이의 이야기 그리고 추임새의 형태를 띤 어머니의 이야기. 하지만 이 이야기 상황을 의미 있게 완결되는데 기여하는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 않는 이 ‘소리 없는 이야기들’이란 무엇인가? 바로 어머니와 아이라는 관계가 함축하는 모든 사연의 기억들이다. 베르그송이 ‘무의지적 기억’이라고 부른 어떤 작용을 통해, 이야기는 이전에 이 두 모자 사이에 있었던 숱한 이야기들을 조언자와 참견자로 이 마당에 불러모은다. 둘 사이에 누적된 이야기들을 알지 못하는 타인은 어머니의 자리에 데려다놓아도 결코 아이의 이야기를 완성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 ‘무의지적 기억’이라는 작용을 통해 소리 없이 참여하는 이 이야기들은 어머니와 아이 개인의 사적인 경험들의 총체에로 제한되어 환원될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로 소환되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들, 이야기가 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개별적 체험들은 그 두 모자(母子)의 것이겠으나 이 체험을 기억 혹은 “경험의 이야기”로 만드는 힘은 그 모자에게로 환원되거나 귀속되지 않는다.

지금의 어머니가 날 때부터 어머니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된 것”이다. 어머니는 어떻게 어머니가 되었는가? 그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그 사실이 그녀를 곧장 어머니로 만들어주는가? 혹은 새끼를 낳은 모든 암 짐승들에게 흐른다는 어떤 본능의 힘이 그녀를 어머니로 만들어주었는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출산과 본능이 그녀를 ‘이야기하는 어머니’로 만들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어머니답게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는 지금의 그녀를 만든 것은, 의식하든 그렇지 못하든, 그녀가 보고 들었던 무수한 어머니 이야기들이다. 이때 ‘어머니 이야기’란 어미다움에 관한 도덕적 교설이나 의무의 담론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어머니가 행하는 모든 이야기들이다. 요컨대 어머니를 낳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다른 어머니들이다. 마치 이야기를 낳는 것은 언제나 다른 이야기들이듯이 말이다. 고로 이런 진술이 성립한다. 여기 이 아이와 이 어머니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이야기는 아이와 어머니 사이에 벌어졌던 무수한 이야기들의 차이 있는 반복이다. 하나의 이야기는 이처럼 다른 이야기들과 무한한 그러나 무제한적이지는 않은(infinite but not indefinite) 연결의 망(網) 속에 자리한다. 그것을 이야기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이라고 불러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이처럼 존재론적 차원에서 역사적 운동을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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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든 몇 가지 용례들 속에서 이야기의 기본적 성격을 추려낼 수 있을까? 무리한 일이다. 이야기는 신화, 전설, 민담, 스토리-텔링이고 그것만은 아니며 픽션이거나 논픽션의 서사이고 또 그것만도 아니다. 일상적인 발화들에서 고도로 체계적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이야기라고 부르지 못할 언어적 실천은 없다. 심지어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표현을 쓴다. 이야기는 논리와 법도에 어긋나고, 일정한 의미에 미달하는 말들조차 포괄한다. 또 이야기는 언어적이거나 비언어적인 유형 무형의 복합적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며 그런 모든 커뮤니케이션들의 심층에, 가능성의 조건으로 자리하는 어떤 존재론적 바탕(ontological plane)이다.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며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라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명제를 조금 비틀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 환언컨대, 세계는 이야기된 세계이며 이야기하는 세계이다.
이제 우리는 처음의 비유로 돌아온 것 같다. 이야기는, 물고기에게 물이 그러하듯이, 우리를 감싸고있다. 그것은 우리 안으로 끊임없이 빨려 들어오며 조금은 달라져 우리 밖으로 내뱉어진다. 물고기에게 물이 단순한 환경이 아니듯이, 이야기는 우리가 그것 없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는 선택적 환경이 아니다. 이야기를 단순히 매체나 매체 형식이라 할 수는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물고기, 적어도 살아있는 물고기와 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이야기와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오직 죽음만이 우리를 이야기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다. 죽음 너머에서 우리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면, 이야기 바깥에서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사실 죽은 자들조차도 이야기의 마법적 자장에 붙들려있다.  인류학자들은 거의 모든 사회에서 이야기라는 상징적 교환의 장터에 첫 거래를 하러 오는 자는 거의 언제나, 죽은 조상들이라고 보고한다. 뒤집어 말하자면, 이야기의 이 한없는 시공간 속에서는 누구도 죽을 수가 없다. 최후의 한 인간의 독백조의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혹시 누가 알겠는가? 그 마지막 인간의 숨이 끊어진 후에도 이야기는 남아 그 한없는 떨림에 공명할 새로운 존재자와 조우하게 될는지….
?어떤 이는 이런 말들이 지나친 과장이며 허풍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혹은 “이야기”라는 용어가 너무 은유적이고 신비적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런 미분화(未分化)된―“덜떨어진”― 학문 이전의 용어를 가지고는 어떤 지적 작업도 불가능하다고 불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이야기”는, 아마도 디지털 세계가 근대의 체계적 분과학문들에게 그렇게 하고있듯이, 우리의 지적인―즉 개념적이고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시험대에 올려놓고 뒤흔드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이야기론(論)”에 따를 때, 디지털(the digital)은 이야기하기의 한 방식이며 존재하기의 한 방식이라는 점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말을 “모든 것이 이야기일 때, 디지털 또한 이야기이다”라는 뻔한 말장난(tautology)과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디지털이 이야기라면 그것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인가?
앞서 물고기가 물을 사유하는 일의 불가능성에 대해 말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도 바로 그러한 조건 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이야기라는 어떤 실체에 “대한” 사유, 객관적 지식을 산출하는 대상적 인식이 아니었다. 고로 이 “이야기론”은 이야기에 대한 메타담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야기 이론이 아니라 그저 또 하나의 이야기라는 점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실은 어떤 것도 메타 이야기가 될 수 없다. 데리다의 유명한 공식에 따른다면, 이야기 바깥은 없는 것이다. 허나 애써 데리다를 찾아나서지 않아도 좋다. 우리말의 어법을 존중할 때 그리고 그 말을 쓰며, 그 말들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어떤 집단적 삶?사유―철학 이전(以前)이며 철학 너머인―에 기댈 때, 이야기에 “대해서는” 오직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이처럼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인식론적 위상―이른바 “아르키메데스의 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야말로 이야기의 본질적이고 존재론적인 성격이라면(따라서 그것은 이야기로서의 세계 혹은 세계라는 이야기의 본질적 성격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매체
인간은 매체이다, 인간은 이야기의 매듭이다

가장 먼저 검토해봐야 할 것은 디지털을 매체(media)로 이해하는 우리의 사유습관이다. 앞서 물고기에게 물이 매체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단순히 매체나 매개형식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야기로서의 디지털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도대체 매체가 무엇인가? 다시 물어보자, 우리는 매체라는 말로 무엇을 지칭하는가, 혹은 매체라는 말로 어떤 일을 하는가, 뒤집어 말하자면, 매체라는 말은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는가? 요컨대, 매체라는 말은 어떤 사태를 야기하고 있는가?

매체는 서로 떨어져있는 둘 혹은 그 이상의 개체 사이를 이어주는 무엇이다. 가령 우리는 언어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 즉 매체라고 말한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모델은 언어에 앞서, 오가는 언어의 양편에, 의도를 가진 발화자, 메시지의 기원이자 소유주로서의 인간 주체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다시 말해 언어는 이 주체가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도구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매체라는 사슬의 양편에 존재하는 고립된 주체―그 중 한편은 능동적이고 다른 한편은 수동적이다―도 이 두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언어는 끈이다. 그러나 그 끈의 진동이 있기 전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언어의 끈과 다른 언어의 끈들 사이의 매듭이 인간이다. 이 때의 언어는, 발성되고 쓰여지는 언어뿐만이 아니라 회화의 언어, 음악의 언어, 건축의 언어, 몸의 떨림과 행동의 양태가 만들어내는 신체의 언어 등등을 모두 포함하는, 요컨대 우리가 “이야기”라고 부른 것이다.
혹시 나는 “의미 있는 것 바깥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단순한 동어반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야기란 “의미화 하는 실천”(signifying practice)을 뜻하는 것인가?―-그럴지도 모른다. 이런 의심은 우리를 곧장 가장 깊은 심연, 즉 사람과 사람 사이(人-間)에로 인도한다. 이야기가 사람과 사람 사이, 인­간(人-間, man-between), 즉 매체라면 우리는 매체가 사람보다 선행함을 알아야한다. 사람은 인간, 즉 매체와 더불어서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매개되지 않은 자로서의 사람(人) 자체, 이 미발견의 특이한 동물을 보고자 한다면, 그들은 오직 인간-이후에나, 하나의 "남은 자들"로서만 나타날 것이다. (...계속)


 

연세대학교 맥(脈, Media Art Culture) 2004 국제학술대회 기획안으로 쓰던 글인데,
연구센터의 예산삭감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오랜 관심사였으니 이제 다시 써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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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의 영화 <시>에 관한 노트(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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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의 영화 <시>에 대한 글쓰기는 영화를 보고나서 떠오른 하나의 직관에서 시작되었다.

“<시>는 삼중(三重)의 ‘시’이다. 표제가 직접 제시하고 있는 문학의 시(詩), 그 배후에 놓여있는 시체의 시(屍), 마지막으로 그 둘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의 시(時)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어렴풋한 직관이 썩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이제 돌이켜보니, 그런 직관이 떠오른 것은 재앙의 여명이었다. 어쩌면, 나르시스처럼 자기 영감에 홀딱 빠진 것이 죄라면 죄였을 것이다.

삼중의 시, 세 겹의 시, ‘시’의 삼겹살…. 그리고 그 ‘시’들 사이의 관계―- 이 직관을 그럴 듯한 한편의 글로 바꾸려고 여름 내내 매달렸지만 아직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꼭 해야 할 일들이 뒷전으로 밀려났고, 충실했어야할 과제들이 시간에 쫓겨 대충 얼버무려지고 말았다. 무엇보다 큰 손실은 완성된 글을 주겠다는 약속을 무려 세 달 가까이나 어기고 있다는 것이다.

성공한 자들이 지녀야할 미덕 중 첫 손가락에 꼽히는 것은 ‘약속을 잘 지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성공의 습관은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꼭 해야 하는 것부터 먼저 하는 것이다. 성공을 위한 아주 중요한 추가적 충고는 이렇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구분할 것.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빨리 간파해 결정을 내릴 것.’ 내가 <시>에 관한 글을 쓰며 보낸 지난 여름 모두는 이 성공의 비결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으로 일관한 시간들이었다. 마감시간이 지난 후, 적어도 일주일 안에 쓰고 싶은 것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쓸 수 있는 것들을 써서 내놓고, 그 다음엔 '해야만 할 일들―지켜야할 다른 약속들―과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했어야만 했다.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

수학계의 최대 난제 중 하나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려다가 일생을 탕진한 수학자들이 꽤나 많았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어떤 직관, 희미한 영감을 가지고 증명의 길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증명에 뒤따를 명예나 상금에 일차적 목표를 두는 수학자는 거의 없다. 조금만 더 나가면 증명될 것 같은 예감―-그들은 대개 그런 '지적 유혹'에 눈이 먼다. 그 탓에, 아마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실현 가능했을 학문적 성취나 사회적 의무 혹은 일상의 소소한 쾌락들을 모조리 내팽개치기 십상이다. 일반인의 눈에 그들의 행태는, 다소 고상해 보인다는 점만 빼면, 도박 중독자의 미친 짓거리와 다를 바가 없다. 문학은 바로 이런 순진하고 맹목적인 실패자들을 위한 변명들의 보고(寶庫)다.

수학자 출신의 한 소설가는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하려다가 인생을 그르치고만 자신의 삼촌―-수학천재로 일찌감치 교수가 되어 가족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저 미친 증명 문제에 몰두하다가 교수직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삶의 가능성들을 잃어버리고만 남자―-을 회상하는 가운데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실수에 의해 인생을 망칠 권리가 있다.” 멋진 말이다. 그러나 정작 더 큰 어려움은 다른데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내기에 던짐으로써 거기에 연루된 타인의 생을 그르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래,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지….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가 자신의 선택에 의해 삶이 망가질 수도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살고 싶다면, 우리는 타인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가―-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기대와 욕망이―- 보게 될 피해나 상처를 견뎌야하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런 것을 손해나 피해로 계상하지 않는, 삶의 세계에 대한 별도의, '다른' 계산판을 지녀야만 한다(나는 그런 계산판을 가진 사회를 '공산(空算)사회'라고 부르며, 비어있음과 비워냄(空)을 헤아릴(算) 줄 아는 사회만이 '더불어' 자유를 사는(共) 삶들을 낳을(産) 수 있다고 믿는다. 빔의 자리(空)에 대한 그리움(憧)을 지닌 공동체가 바로 詩的 꼬뮨이고 문학적 에토스이다). 우리는 약하고 (아마도 약하기 때문이겠지만) 약삭빠른 존재이기 때문에 이익과 손해, 가해와 피해를 따지는데 아주 능하다. 그런 습성을 제거할 길은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설 필요는 '항상' 있다.

우리는 신도 성자도 아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마치 신이나 성자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할 수 있어야하며 또 그렇게 한다. 인간은 사랑의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앞서의 自問에 대한 自答은, 따라서, 이렇다. 나는 실패할지도 모를 삶을 선택해 생을 소모할 수 있도록 허여해준 사랑의 세계 속에 내가 살고 있다고 감히 믿기 때문에!

아무튼 이제 마지막 힘을 다해, 그간 써놓은 파편들을 염주알처럼 이어 대충이라도 결과물을 내놓아야할 시점이다. 나는 염주알들을 꾀어줄 논리와 서사의 무명실을 다듬는다.

And

지젝과 '정치적인 것'을 향한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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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의 탈(脫)정치를 넘어서”



(시민의 죽음으로부터) ‘정치적인 것’의 재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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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제 일원론의 시대는 성공과 동시에 붕괴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경제다!”라는 구호는 더 이상 경제적 구호가 아니라 정치적 구호로 반전된다. 게다가 그 사이비 경제적 정치 구호에서는 묘한 종교적 근본주의의 냄새까지 난다. CEO 대통령 이명박은 ‘생필품의 물가를 정부가 직접 관리하라’는 개발독재 시대의 명령을 내리고 (‘부시-너머의 오바마’가 아니라 그저) ‘부시-이후의 오바마’는 시장주의 경제를 국가-시장주의 경제로 다시 쓰는 일에 매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되돌아온 중세적 세계―-신으로서의 자본-권력―-에서 법은, 마치 카프카의 법정에서처럼, 삶에 대한 직접적 명령처럼 하달되나 어디에서도 그러한 명령의 실체가 발견되지 않으며, 따라서 사후적 책임의 주체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이제 우리는 타자들과의 이해관계의 조율의 장이라는 근대 정치의 공식적 공간--공적 영역--이 소멸된 이상한 세계와 마주서 있다. 그 탈-정치적 정치, 탈-경제적 경제의 세계는 이명박이 ‘경제는 심리다’라고 말할 때의 ‘심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어떤 심리인가? 상상계적 세계가 곧장 상징계로 전환되는 자폐적, 유아적 세계이다. 광고와 대중가요를 뒤덮는 '일어문적 표현들'----‘생각대로 하면 되고'에서 '비디바비디부’와 '빠삐빠삐', '아브라카타브라'에 이르는--은 유아적 자폐증의 신화적 세계이거나 정신분열적 공간이다. 이러한 자본-권력의 정신병의 경제사회적 배후를 이루는 것은 소위 ‘사회의 허리’라 불리는 중산층, 세대로 따지면 486의 중년층과 그들의 세계인 중간계급적 우주-―오이코스-―의 붕괴이다. 신자유주의적 양극화에 따른 이 붕괴로부터 남겨진 것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 공포에 휩싸인 사회의 잔여들이다. 오늘날 해방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은 바로 이 잔여들-―모두에 잠재돼 있는 유령적 주체로서의 ‘호모 사케르’-―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폐허의 '남은 자들'(Remnants)을 역사의 새로운 주체로, '새로운 역사의 행위자'로 현동화(actualize) 시킬 수 있는가?


적대, 혹은 ‘윤리에서 정치로’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적 판본에는 두 개의 유형이 있다. 하나는 차이와 다양성을 관용하는 진보적 시민도덕이고, 다른 하나는 무관심(indifference)으로 표현되는 탈-정치 문화이다. 전자가 참여적 개혁주의라면 후자는 수동성으로의 퇴행-―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 불렀던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서로 상반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그 두 경향은 공히 탈-정치(post-politics)이다. 어째서인가? 정치적 무관심이 '정치'가 있던 자리에 행정이나 치안 서비스가 나타나는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면, 차이와 다양성의 정치는 ‘정치’를 도덕이나 윤리로 치환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연의(authentic) 정치란 어떤 것인가?

무페와 라클라우는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 관한 칼 슈미트의 규정-―적과 동지의 구분―-으로부터 ‘적대(antagonism)’라는 개념을 끄집어내 이를 보편성을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으로 전환시킨다. 바로 이 적대의 재발견에 최근 좌파 정치학의 공유지(common)가 있다. 정치적인 것의 요체는 통합과 안정이라는 ‘무덤의 평화’가 아니라 적대를 파고드는 자유의 동학(動學), ‘궁극적 평화를 향한 투쟁 과정으로서의 삶 자체’이다. 사회적인 것의 고유한 불가능성-―사회란 이름의 실체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다수자들의 삶과 그들을 하나로 셈하는 권력 사이의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할 뿐이다-―을 은폐하고 봉합하려는 시도가 소위 통합과 안정과 질서의 정치, 즉 치안(police)이며 치안 또는 공안(公安)은 사회로부터 정치적인 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노동과 임금의 교환질서, 고용자와 피고용자의 위계질서를 위협하는 어떠한 말과 행동도 사전에 봉쇄하고 분쇄하려는 자본의 정치적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경제가 자본의 정치라면, 자본의 정치는 "독재적 탈정치"라는 역설을 구현한다) 그러면 이에 맞서는 정치적 주체화의 투쟁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정치적 행위자로서의 ‘바틀비’

슬라보예 지젝은 최근 <시차적 관점>에서 멜빌의 소설「필경사 바틀비: 월-스트리트 이야기」의 주인공인 바틀비(그의 거부―‘I would prefer not to'―에 대한 해석에서 그 가능성의 윤곽을 그린다. 지젝은 ’거부는 해방정치의 시작‘이라는 네그리와 하트의 바틀비 해석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결정적인 대목에서 반전을 시도하는데, 요컨대, 바틀비의 거부는 출발점이 아니라 근원이며 목표로 간주된다.

“하트와 네그리에게 바틀비의 ‘안 하는 쪽으로 하겠다’는 말하자면 단지 식탁을 치우는, 기존 사회의 우주로부터 거릴 획득하는 첫 번째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 후 필요한 것은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공들인 작업으로의 이동이다. (…) 그러나 우리의 시각에서 이것은 정확히 피해야 하는 결론이다: 그 정치적 양식에서 바틀비의 ‘안 하는 쪽으로 하겠다’는 그 후 기존 사회의 우주에 대한 ‘규정된 부정’의 끈질긴 긍정적 작업 속에서 극복되어야 하는 ‘추상적 부정’의 출발점이 아니라 일종의 아르케(arche), 전체 움직임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원리이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건설 작업이 그것에 몸체를 부여한다.”(시차적 관점, 747쪽)
* 이것은 바틀비를 '~하지 않을 가능성', '비-존재이려는 잠재력(potentiality to not-be, dynamis me einai)‘으로 읽고, 이를 현행적(actual) 행위에 수반되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무위(無爲)의 존재-운동으로 이해하는 ‘아감벤의 바틀비’와 가깝다. (Giorgio Agamben, The Coming Community pp. 35~37.)

지젝에게 바틀비의 거부는 행위의 수동적 거부(‘하지 않겠다’)라기보다는, 그 자체가 하나의 적극적인 행위(‘안 하는 쪽으로 하겠다’)이며 바틀비는 그저 ‘~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지 않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틀비는 죽음에 이를 만큼 강렬하게 무언가를 원했고, 그러한 충동을 삶의 공준으로 삼았다. 그 충동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젝은 바틀비의 '죽음충동'에서 자폐적 절망이나 ‘죽어버리자’는 자살욕구가 아니라, 존재론적 부정성(not to)의 간극 찾아낸다. ‘바틀비의 물러남’으로부터 ‘새로운 질서의 구성’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바틀비의 물러남’을 ‘새로운 질서’의 구성적 규준으로 삼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요컨대, ‘바틀비를 넘어서!’가 아니라 ‘바틀비를 향해서!’가 우리의 방향이다.


시차적 전환, 또는 유물론적 메타노이아

이때 '바틀비'는 ‘모든 것을 거부한 채 죽음을 향한 한 길을 가는 자’라는 그의 외적 행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바틀비는 우리가 불가피한 ‘현실(reality)’이라고 여기는 이 분명한 세계 전체가 실은 한낱 허깨비들의 밤에 불과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캄캄한 번갯불’(보들레르의 표현)의 내리침이며, 어떤 것(something)과 다른 어떤 것 사이의 중간 단계가 아니라 어떤 것과 그것의 자리이자 공백인 아무 것도 아닌 것(nothing) 사이의, 이를테면 1과 0 사이의 간극이다. 경제와 정치의 경계, 법과 삶의 경계가 형해화된 이 신화적 탈-정치의 시대의 극복은 물질적 현실과 보다 ‘고차적인’ 다른 현실의 차이를 이 현실과 그 자체의 공백 사이의 내재적 차이, 간극으로 환원하는 것, 다시 말해 “물질적 현실을 그 자체로부터 분리시키는, 그것을 ‘비-전체(non-all)’로 만드는 공백을 구별하는 것”이라고 지젝은 말한다. 바틀비의 거부의 몸짓은 이 내재성으로의 초월, 지젝이 ‘시차적 전환’이라 부른 유물론적 메타노이아(metanoia)를 가리킨다.

이 어려운 얘기가 겨냥하는 사태는,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는 지구적 차원에서 양극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한편에 고등의 문명적 삶을 향유하는 소수의 부유한 인간들이 있고, 총체적으로 악화되는 삶 속에 속절없이 죽어가는 다수의 인간-이하들이 있다. 게다가 그들은 과거와 달리 한 국가와 다른 국가의 국민들처럼 멀리 떨어져있는 것이 아니라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인근의 슬럼처럼 붙어있다. 세계 어디서나 그렇다. 자본을 소유함으로써 초인의 위세를 지니게 된 소수와 나날이 인간-이하로 추락 중인, 따라서 기존의 체계에선 점점 "셈해지지 않게 되는" 이 다수들-―그것이 대중(Demos)이든 인민(people)이든 다중(multitude)이든-―이 집합적 정치 행위로 나아가느냐, 그렇지 못하고 (사육)동물의 수준으로 추락해 새로운 노예제 사회가 공고화 되느냐가 문제이다. 이 투쟁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이념과 욕망의 좌표를 필요로 하며, 그러한 혁명적 좌표는 이미 다수의 불만 그리고 사실상 이 세계적 문명의 실체인 다수의 역능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이제까지 자신의 선조들-―피억압자들―-이 투쟁 속에 성취해온 모든 문명적 가치들을 죄다 몰수당하고 있는 자들이 그러한 박탈과 착취의 고통 한복판에서 자신의 역사와 존재 의미-―이념의 성좌배치(constellation)-―를 기억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이것은 일국적 차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며 그 공격 목표는 위계적 권력 구조와 자본주의적 착취 체제 일반이 될 것이다.' 

여기서 현대 해방정치가 처한 지적, 실천적 교착상태를 극복하려는 지젝의 시도, 혁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 할 만한 이 전환의 요점은 우리의 주관적, 내면적 각성을 뜻하는 것(회심)이 아니라-―그것이 아닌 것도 아니지만-―,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삶의 모든 자리에서 계속되어야 한다는 행위에의, 영구혁명적 요청이다. 어떤 행위인가? (언제나 주권권력과 자본의 코드로 환원되는) ‘현실’이라는 환상을 몰아내는 행위, ‘어둠(실재)의 빛’으로 ‘빛(현실)의 어둠’을 몰아내는 계몽의 행위, 바틀비적 거절의 행위, 촛불의 행위이다. 우리는 바로 그 무위의 행위, 무욕의 욕망의 자리를 고수해야 한다.


2009년 10월. 서강대 대학원신문 기고문 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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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레닌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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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을 넘어, 진리의 심연을 떠안는 주체의 정치로

슬라보예 지젝의 첫 영문 저서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국역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는 1989년에 출간되었다. 이 놀라운 데뷔작 그리고 이후 매년 한, 두 권씩 나왔기에 느린 독자의 입장에서는 거의 동시에 출간된 듯한 느낌을 주는 일군의 초기 저작들-―『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1991), 『삐딱하게 보기』(1991),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2) 등-―은 지젝을 단박에 서구 인문학계의 스타로 만들어주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지젝이 이때부터 구가해온 성공 가도에는 아주 기이한 면이 있다. 그것은 지난 20년 간 소위 '대세‘라고 여겨지던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최종적 승리, “역사의 종언”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냉소적 회의주의 등등의 주류적 흐름을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성취된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을 반복하자!”는 주장은 바로 그런 시대착오, 혹은 반(反)시대성의 정점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젝의 기이한 성공

한국에 번역 소개된 지젝의 첫 번째 책은 『삐딱하게 보기』로 1995년에 출간됐다. 당시 대학가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가 그 사상적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었다―의 기세가 아주 등등했고 마르크스주의 담론들은 ‘운동권’과 함께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구조주의자로 알려진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으로 대중문화를 분석한 『삐딱하게 보기』도 그런 시류 속에서 수용됐다. 90년대 중반 한국은 대중문화 열풍의 한복판에 있었고, 지젝이 소개한 라캉의 욕망 이론은 이 소비문화의 열풍에 비평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이론적 지침서 역할을 했다. 지젝이 ‘포스트모더니스트’로 오인된 이유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나 비판이론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시각 그리고 고급 이론과 저급의 텍스트들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경쾌한 저술 스타일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싱싱하고 매력적인 이론가가 방금 우리가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변증법적 유물론’의 혁신적 계승자이리란 생각을 당시 누구도 (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탓에 그를 잘못 보았던 것이다. 『삐딱하기 보기』의 마지막 장(‘형식적 민주주의와 그에 대한 불복’)은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요즘 지젝이 하는 얘기들의 기본 문제의식이 이미 거기 들어있었지만 당시 그 대목에 주의를 기울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의 1장은 ‘마르크스는 어떻게 증상을 고안했는가?’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증상’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사람은 프로이트이지 마르크스가 아니다. 그러나 지젝은 (『자본론』에 대한 증상적 독해symptomic reading를 시도했던 알튀세르의 학생답게도) 『자본론』 1장의 상품물신 분석에서 마르크스가 어떻게 프로이트의 분석 방법을 선취했는지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이 장은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라는 다 죽어가던 지적 전통에 라캉의 (포스트)구조주의적 이론을 새 피로 수혈함으로써 놀라운 활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좀 더 사소하고 피상적인 대목인 출간년도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지젝을 제대로 읽어왔던가

이 책이 나온 1989년은 아주 상징적인 해이다. 그 해 봄 중국 공산당은 천안문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위대-―인민들!-―를 탱크로 깔아뭉갰고 가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잇달아 붕괴했다. 그 흐름은 마침내 소련의 해체로 귀결되었고 오늘날 1989년은 ‘사회주의의 공식적 사망년도’처럼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현실 사회주의와 운명을 같이하게 되리라는 게 모두에게 분명해보였던 바로 그 무렵, 놀랍게도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의 부활을 준비하는 책을 내놓으며 두더지처럼 저 만장일치의 컨센서스를 무너트릴 땅굴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도 ‘현존 사회주의 국가는 망했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은 좀 더 긴 생명력을 가지리라’는 식의 점잖은 견해가 없진 않았지만,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에 사망확인서를 발부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실제로 사람들은 사회주의 몰락 이후 마르크스에 대해 훨씬 더 관대해졌다. ‘좌익’ 학생들을 야단치던 교수들도 『공산당선언』을 대학생 교양도서 목록에 주저 없이 끼워 넣음으로써 자신의 ‘교양’을 과시할 수 있었다.
숲에서 만난 호랑이와 동물원에 갇힌 호랑이 그리고 박물관에 박제된 호랑이가 주는 느낌은 결코 같은 것일 수가 없다. 동물원 우리 안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보며 우리는 야성적 폭력의 우아한 꿈틀거림을 음미할 수 있다. 박제된 호랑이는 힘찬 야수성에 대한 멜랑콜리한 향수와 더불어 어쩐지 서글픈 느낌마저 들게 해준다. 그러나 살아있는 호랑이와 숲에서 마주친다면 저 모든 감상들이 순식간에 휘발되고 끔찍한 공포가 엄습할 것이다. 1989년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야수가 박물관에 ‘모셔진’ 해였다. 하지만 바로 그 해에, 곧 지도에서 사라질 현실 사회주의 국가(유고슬라비아) 출신 지식인 한 사람이 우리에게 전혀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도 지젝을 읽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변화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지젝의 ‘레닌론’은 그 시금석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2인 3각’

마르크스가 ‘위대한 19세기 사상가’라는 원치 않던 호사를 누리던 때에도, 레닌에 대한 평가는 냉혹했다. 1989년 이래로 좌파와 우파가 공유한 불문율 중 하나는 ‘마르크스는 괜찮아. 그러나 레닌은 안 돼!’였다(이것은 유대교의 불문율, ‘예수는 괜찮아. 그러나 바울은 안 돼!’와 닮았다). 지젝이 이 불문율에 제기하는 반론은 우선 이런 것이다. “레닌에 관해 말하지 않으려면 마르크스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어라!” 어째서? 레닌은 마르크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뮤니즘이라는 잠재력(potential)의 현동화(actualization)를 표상한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교양적 독자가 아니라 실천적 마르크스주의자,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있는 마르크스주의’이다. 실천(praxis)이라는 끈에 의해, 마르크스와 레닌은 ‘2인 3각’ 달리기에서처럼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가 된다’는 말에는 늘 주의할 필요가 있다. 경기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2인3각’은 둘이 하나가 되는 조화의 체험과는 사뭇 거리가 멀다. 기본적 느낌은 ‘마음대로 되지 않음’과 ‘뒤뚱거림’이다. ‘살아있는 마르크스주의’란 표현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도 바로 그 대목이다. 살아있음의 구체적 체험들--예컨대 사랑--이 대개 그러하듯, 그것은 이질적인 타자와의 마찰, 부조화, 마치 장애물을 안고 뛰는 듯한 불편함을 선사한다. 물론 2인 3각의 묘미는 바로 그런 상호 타자성을 견디고 넘어설 때, ‘나의 다리’도 ‘너의 다리’도 아닌 저 세 번째의 다리―그러므로 둘 모두에게 ‘타자의 것’인 다리―가 마치 내 다리인 것처럼, 보다 정확히 말해 내가 그 ‘타자의 다리’에 붙은 신체인 것처럼 움직일 때의 희열(joussance)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이라는 ‘2인 3각’ 달리기에서 저 ‘세 번째 다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코뮤니즘’이다. 이 세 번째 다리―음탕한 농담에서 언제나 남근(phallus)을 가리키는―가 포퓰리즘적 지도자의 형상을 띠거나 파시즘적인 (’우리가 남이가‘의) ’우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아니,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러한 위험을 과감히 가로질러가야 한다. 레닌의 위대함은 그런 위험--나중에 '스탈린주의'라는 이름을 갖게 될 어떤 전체주의화의 조짐들--을 신중히 회피한 신중함에 있는 게 아니라, 그가 혁명 과정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권위주의화의 위험을 혁명의 일부로 과감히 받아들여 그것과 투쟁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은 바디우의 용어를 빌자면, "혁명에 대한 충실성(fidelity)'이다. 혁명은 외부의 반혁명 세력과의 투쟁일 뿐만 아니라 자기 안의 반혁명적 유혹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레닌의 충실성에 관해 말하자면, 그것은 마르크스란 인물이나 그의 텍스트에 대한 충실성이 아니라 마르크스라는 타자의 욕망---마르크스 안의 수수께끼로서의 코뮤니즘--, 다시 말해 '제3의 다리'에 대한 충실성이었다.       

‘레닌을 반복하자’는 지젝의 말

지젝이 강조하는 레닌은 1914년의 재난으로부터 1917년의 혁명의 이르기까지의 ‘불가해한 레닌’이다. 1914년 제2인터내셔널이 1차 대전을 용인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제까지의 사회주의 이념은 깡그리 무너져버렸다. 사회주의만이 아니다. 1차 대전은 유럽 부르주아의 계몽주의적 진보관도 함께 박살내버렸다. 당시 레닌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스위스 베른의 시립도서관에 처박혀 헤겔의 『논리학』을 정독했다. 이 독서 과정은 <철학노트>라는 주석서로 남아있는데, 이 수고(手鼓)에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해석에 대한 근본적 재고와 새로운 도약의 흔적들이 흩어져있다. 지젝은 레닌이 헤겔 『논리학』 독해에서 통찰한 그 단락(short-curcuit)의 지점을 ‘큰 타자는 없다’ 라캉의 명제와 연결시키며 레닌이 그 큰 타자의 ‘빈자리’에서 허무가 아니라 주체의 자유를 실현할 장(場)을 발견하는, 혹은 바로 그 간극(‘빈자리’)을 주체적으로 떠안는 실재(the Real)의 행위를 보여주었다고 말한다. 지젝이 거듭 강조하는 것은 레닌의 바로 이 행위, 혁명에 대한 어떠한 전제나 보장도 사라진 큰 타자의 공백(the Void)을 주체적으로 떠안는 몸짓(gesture)이다. 그것은 무조건적 의지주의가 아니며 레닌이 책에서 ‘읽은’ 것을 현실에 과감히 ‘적용’했다는 뜻도 물론 아니다. 마르크스의 미완의 텍스트가 레닌이라는 ‘사라지는 매개자’를 통해 미완결의 현실이라는 텍스트와 조우한 이 사건의 변증법적 핵심은 사랑에 관한 라캉의 통찰-―사랑은 두 개의 결핍의 만나 발생시키는 잉여이다-―의 정치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모든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모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라는 헤겔의 모호한 명제 또한 혁명 기간 레닌의 ‘프락시스’ 속에서 분명한 뜻을 보여준다. 혁명은 이성과 현실이 자기 지양을 통해 서로에게로 전환되는 트랜스크리틱(transcritic)의 시공간이다. 또한 그것은 주체와 객체가 자신의 간극-―주체 안의 주체 이상의 것인 '충동'과 객관적 사회 현실이라는 상징계 안에 은폐돼 있던 모순의 실재-―을 열어 서로에게로 침투하는 사건이다. “역사의 종말”이라고 일컬어지는 후기 자본주의적 봉쇄와 교착상태 속에서 우리가 지금도 그런 주체와 객체의 동시적 “열림”을 경험할 수 있을까? 지젝은 이 물음을 꾸준히, 거듭해서 던져옴으로써 ‘1989년 이래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적 상징계로 닫혀버린 우리시대’의 원환에 '구멍'을 내왔고, 독자들은 그것을 해방의 가능성을 향한 ‘열림’으로 체험했다---이것이 지젝의 기묘한 반시대적 성공의 이유가 아닐까. 니체가 『우상의 황혼』에서 했던 말을 살짝 변경하여 이렇게 말해보자. “내 행복의 경로: 하나의 노우, 하나의 예스. 하나의 직선. 하나의 목표…” 지젝이 지그재그(zigzag)처럼 보이는 행보로 걸어가는 일직선은 바로 그 "물음의 일직선"이다.

공산주의 혁명, 이 난처한 물음

레닌의 복권은, 단적으로 말해 공산주의 혁명의 복권이다. 지젝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보여서 대략 눈 감고 넘어가고 싶어지는, 이 소박하고도 외상적인 방향타―-공산주의 혁명-―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1세기에 공산주의 혁명이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지젝의 독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할 불편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지젝의 기본적 대답은 이런 것 같다. “이 혁명을 폐기처분함으로써, 이제껏 우리가 얻은 것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요, 앞으로 잃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더 늦기 전에 선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참조) 자본의 쇠사슬에 묶인 채 눈앞에서 무너져가는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우리의 숙명은 아니라는 데 지젝의 내기가 걸려있다.
Revolution at the Gate. 그 앞에 혁명을 세워두고 있는 어떤 문(門)이 떠오른다. 그것은 벤야민이 “메시아가 들어오는 작은 문”이라고 불렀던 현재-시간이며, 현재-시간은 과거와 미래의 중간 지점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무한하고 무심한 흐름인 시간이 둘로, 새로운 기억(잊혀진 과거의 회귀)과 예감(이제까지와는 다른 가능성의 약속)으로 갈라지는 유한성의 간극이다. 그 간극은 레닌은 1914년의 위기를 1917년의 기회로 전환시켜 하나의 가능성으로 붙들기 위해 과감히 뛰어들었던 실재의 심연이기도 하다.

포퓰리즘을 넘어

오늘날 파시즘의 유사 버전으로 도처에서 자라나고 있는 좌파적, 우파적 포퓰리즘들-―이명박 정부의 “부자들을 위한 포퓰리즘”도 그 중 하나이다-―은 사람들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형식으로 봉합할 수 없는 자본주의적 간극실재(그 앞에서 사회가 더 이상 자신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주장할 수 없는 모순과 적대의 ‘열림’)을 감지하기 시작했다는 표지이다. 비록 그것이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지도자와 대중들의 무분별한 요구가 직접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로 나타기는 하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치안이나 행정서비스―-사실 상의 ‘탈정치’-―로 환원되지 않는 본래적 ‘정치’가 여전히 가능하다는 긍정적 표식이 들어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젝은 포퓰리즘을 돌출적인 악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이 구성되는 하나의 방식”’으로 이해하는 라클라우의 견해에 동의한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주체(대중)가 자신의 수치와 대면해야할 사회적 적대의 심연을 사이비 적대-―‘좌빨’과 ‘촛불좀비’에서 ‘열폭하는 찌질이’와 ‘쥐박이’에 이르는 온갖 혐오의 형상들―-를 통해 회피하면서 기성의 욕망의 코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요구만을 계속하는 ‘증상’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비판받아야할 ‘무책임’과 ‘비진리’, 그리고 ‘비(非)주체’의 정치이다. 포퓰리즘의 문제는, 그것이 “인민의 열망과 불만을 정치적 비전으로 발언하지 못하고 번역하지 못한” (정치엘리트만이 아니라) 인민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기념비”라는 데 있다. 라클라우의 포퓰리즘 이론에 대한 지젝의 비판은 결국 이 주체의 간극과 그것을 떠안는 ‘행위’의 문제로 집약된다. 포퓰리즘 정치에서 대중은 여전히 지도자와 구분되는 객체(대상)의 자리에 머문다. 거기에는 (상상적, 상징적) 자기를 부정할 때 비로소 생성되는 ‘실재의 주체’로서의 대중 자신이 결여돼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포퓰리즘에 대한 라클라우의 담론에도 이 ‘실체이자 주체’로 도약하는 대중의 ‘행위’가, 한마디로 ‘레닌적 제스처’가 결여돼 있다. 지젝은 라클라우가, 근심에 빠진 환자에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좋은 의사의 충고입니다!”라고 말하는 의사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난한다(『레닌 재장전』에 실린 지젝의 글 참조).

포퓰리즘을 넘어서는 레닌적 ‘진리의 정치학’은 ‘진리를 '소유'한 자―-그는 언제나 물화된 진리의 소유물이 될 수밖에 없다-―의 독단적 통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의 타자’를 향한 우리 자신의 물음(問)이 열리는 구멍(口)에 뛰어들어 자신을 새로운 역사적 형세(constellation)를 여는 문(門)으로 변화시키는, ‘실체이자 주체’인 진리로 생성되어가는, 우리 삶의 과정 자체이다. 지젝은 이를 “생성 중인 레닌”이라 불렀다. 우리가 지젝의 텍스트와 ‘2인 3각’ 달리기를 해야 할 운동장도 그 주체적 생성의 시공간으로서의 ‘삶-정치’이다.

(2010. 9월. <중앙대 대학원신문> 기고문 초안)

 

And

지젝의 사랑론(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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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사랑론(論):
‘쿨한’ 사랑에서 열외(列-外)하는 열애로!


 

시와 사랑, 그 폭력적 소격효과

로만 야콥슨에 따르면 시적 언어란 “일상 언어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organized violence committed on ordinary speech)”이다. 이 유명한 명제를 살짝 바꾸면, 슬라보예 지젝의 사랑론으로 들어서는 입구로 삼을 수 있다. 사랑이란 일상적 삶에 가해진 조직적 폭력이다. “사랑은 존재의 질서에 하나의 차이(a Difference)를 만들고 균열을 내려는 폭력적 정념, 다른 모든 대상을 희생함으로써 하나의 대상을 특권화하려는 폭력적 정념이다.(…) 사랑의 선택은 이미 자체로 폭력(violence)인데, 그것은 폭력이 사랑의 대상을 맥락에서 떼어내 사물(Thing)의 자리에 올려놓기 때문이다.”(<죽은 신을 위하여> 57쪽) 지젝이 말하는 사랑의 폭력성은 “사랑의 매”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며, 사랑한다면 애인을 두들겨 패라는 충고도 물론 아니다. 사랑이 “매”라면,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각성의 죽비에 가까울 것이다.

사랑은 일상이라는 ‘자동화된(automatized)’ 궤도에서 주체를 탈선시키는 삶의 시어(詩語)들이다. 시의 요체인 은유가 기표의 행렬을 탈선시켜 ‘낯선’ 기의와의 만남을 창출하듯이, 사랑의 만남은 일상의 껍질을 깨트려 그 안에서 삶의 ‘낯선’ 얼굴과 조우하게 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일상적 삶을 ‘낯설게 하는’ 사랑의 소격 효과(estrangement effect)를 ‘특별한 일상사’를 만드는 일(가령 연인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온갖 이벤트들)로 오해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밥 먹고, 차 마시고, 도서관에 가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갑자기 특별해지는’ 경험이다. 특별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그 사람이 특별해진다. 여기서 핵심은 대상이 아니라 주체의 변화에 있다.

‘사랑이 나를 한다’

흔히 쓰는 ‘사랑한다’라는 표현은 사랑에 관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쉽다. 우리는 사랑을 ‘나는 공을 찬다, 밥을 먹는다’와 같은 능동적, 의도적 사태로 이해할 수 없다. 예컨대 남성의 발기 같은 것이나 여성이 사랑에 빠지는 경우(저 악명 높은 “백마 탄 왕자님”)를 떠올려보자. 그런 장면들에서 사랑은, 분명히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나의 의지와 욕구에 따라 자발적, 능동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 사태를 가리킨다. ‘내 안에, 나 아닌’ 힘의 기상--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이나 리비도라 부르는 바로 그것(Id)의 작용--인 사랑은 타자적인 것(the Other)의 경험이다. 타자는 내 바깥의 객체가 아니라 내 안의 낯선 대상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처럼 외밀한(extimate) 타자와의 조우(encounter)이므로, 사랑에서 주체가 피동성, 수동성을 경험하는 것은 불가결하고 본질적이다. 사랑의 경험은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내 마음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사랑의 역설적 힘은 바로 그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마음’이 나를 변화시키고, 그러한 변화가 지렛대가 되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리라 여겨지던 세상’을 바꾸게 한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내가 사랑을 한다’라기보다는 ‘사랑이 나를 한다’라고 표현하는 게 비문법적인 문장이긴 해도 사태에 훨씬 더 부합하는 표현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속에 있지 않다
사람이 사랑 속에서
사랑하는 것이다
(이성복,「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전반부)

한데 “사랑이 나를 한다”니?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사랑이 나를 (…)한다’라는 문형(文型), 즉 사랑이라는 (자발적 예속이자 예속된 자발성의) 형식 안에 ‘무엇을 어떻게’라는 내용을 채워 넣는 것--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동적, 의지적 부분의 전부이다. 그러니 괄호 안에 들어갈 첫 번째 내용은 일단 ‘사랑이 나를 (…하게끔 유혹)한다’ 이다. 사랑은 우리가 타자(욕망의 원인이자 대상)에게 다가가도록, 그에 관해 무언가를 하도록 유혹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사랑은 답하지 않는다.
최근 <검사 프린세스>라는 드라마에서 심오한 대사 한 토막을 귀동냥했다. 주인공인 서인우 변호사는 신참 검사인 마혜리(여주인공이며 서인우의 복수의 대상인 마상태 사장의 딸)를 자신의 복수의 도구로 이용하고자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한다. 복수 계획을 돕던 인우의 여자친구 제니는 그와 마혜리 사이에 사랑이 움텄으며 그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 인우를 다그치며 묻는다. “도대체 네가 마혜리와 하고 싶은 게 뭐야?” 그는 괴로운 표정은 지으며 대답한다. “아무것도…하고 싶지 않아!”
애무(caress), 입맞춤(kiss), 성교(sex)…등등을 떠올리던 내 뒤통수를 후려친 이 뜻밖의 대사는 사랑의 무위적(無爲的) 본성을 깨우쳐준다. 그렇다. 사랑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 사랑에 빠진 사람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본업에 가장 충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사랑의 무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을 망치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에 관해 무언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랑에 관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천박한 오해와 실수는 ‘사랑에 관해 무언가를 하는 것’ 자체는 아니다. 그 ‘무언가를 하는 것’을 사랑과 혼동하는 것, 예컨대 ‘사랑’이라는 단서를 걸고 이러저러한 기대나 요구를 하거나, 의무나 권리 등을 내세우는 짓들이다. 이런 유감스런 사태에 대해 시몬 베유는 사랑(아가페)은 ‘채움’이 아니라 ‘비움’에 가깝다고 말했다.
“인간에게 애원하기, 그것은 자기 자신의 가치 체계를 타인의 정신에 억지로 강요하려는 절망적인 시도이다. 반대로 신에게 애원하는 것은 신의 가치를 자기의 영혼 속에 받아들이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우리가 집착하고 있는 가치들을 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르며, 내 안에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47쪽)

내 안의 ‘빈자리’의 운동

사랑은 내 안에 ‘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달리 말해, 마음에 구멍이 뚫리는 일이다. 이 구멍을 어찌하면 좋은가? 사랑에 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랑이여, 당신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Che vuoi)?” 오직 사랑하는 자 스스로가 답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사랑은 주체에게 상상의 힘을 촉발시킨다. 지젝은 ‘케 보이’에 대해, 그 물음은 타자 자신에게도 수수께끼라고 말했다(<전체주의가 어쨌다구?> 1장 ‘타자 안/의 수수께끼’) 사랑은 우리를 타자에게로 이끌지만, 우리를 유혹한 타자조차도 사랑의 내용이 무엇으로 채워져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정답은 물론이고 대답조차도 갖지 않는 질문이다. 왜냐면 그것은 ‘엄마의 자지는 어디 있지?’라는 아이의 물음처럼, 잘못 물어진 물음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드라마는 그런 실수(miss)에서 시작된다. 오이디푸스 시기의 아이가 엄마를 향해 던지는, 그리하여 ‘아버지’라는 (오)답을 찾아내는 ‘케 보이?’는 사실상 질문이 아니라, 엄마 안의 타자, ‘m(other)’라는 견딜 수 없는 ‘벽’을 ‘문’으로 바꾸는, 혹은 자신이 (기어올라)가야할 ‘길’로 만드는 인간의 삶-충동 그 자체를 상징화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말했다. “그가 누구인지 알고 싶거든, 그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보라.” 거기에 다음과 같은 마르크스의 통찰을 덧붙여보자. “그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지가 아니라, 그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보라. 그가 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이다.”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위해 무엇을 행하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해줄 것이다. 그 증명 앞에서는 어떤 신분도, 어떤 지위도, 어떤 정체성(identity)도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사랑이 나를 (…) 한다’에서 괄호 안을 채우는 궁극적인 말은 ‘사랑이 나를 (나이게) 한다’가 될 것이다.

사랑에 응답하는 힘(response-ability), 혹은
소멸하는 매개자의 지위를 기꺼이 떠맡기

사랑이라는 사건은 소소한 쾌락들로 이뤄진 일상의 질서에 의해 후원되는, 혹은 사실상 그런 질서를 후원하는 기존의 정체성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만들며, 자기동일성의 숨겨진 핵심(으로서의 간극과 균열)에 도달하게 만든다. 사랑은 ‘이행적’ 현상이며-―라깡은 ‘어떤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그의 세계가 바뀌고 있다는 징후이다’라고 말했다-― 사랑의 대상은 전환기 대상(transitional object)의 성격을 띠게 된다. 아이들이 절대로 몸에서 떼어놓지 않으려고 하는 이불조각이나 인형, 장난감 따위를 가리키는 ‘전환기 대상’의 성격은 대략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어제 그것은 무엇이었나? 무(無)! 오늘 그것은 무엇인가? 전부!’ 혹은, ‘오늘 그것은 무엇인가? 전부! 내일 그것은 무엇일까? 무!’

우리는 사랑의 대상을 하나의 세계(상징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로 삼는다. 우리의 발이 징검다리에 머물 때, 그것은 우리의 존재 전체를 지탱하는 사물(Thing)이지만 강 저편으로 건너갔을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nothing)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기꺼이 누군가의 ‘사랑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지젝의 표현을 쓰자면, ‘소멸하는 매개자(vanishing mediator)’의 지위를 떠맡는 일이다. 김소월의 시에서처럼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고 노래하는 진달래꽃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쓰라린 이 사태에 관해 한 낭만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신비에서 시작되었으므로 신비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이행이 완료됐을 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그이가 어디로 갔는지, 우리를 사랑했던 그이가 어디에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하리라. 설령 그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내 옆에서 쿨쿨 자고 있다고 할지라도.
 

S : 주체를 지우는 빗금이자 여는 간극으로서의 사랑

사랑은 타자를 향해 나를 ‘탈주체화’하는 역동적 과정이며, 그러한 탈주체화를 통해 참된 주체(타자, 다른 자로서의 나)가 되는 역설적 사태(Subject)이다. 사랑이라는 사건은 주체 안에 그러한 ‘열림’을 도입한다. 사랑에 의한 열림은 폐쇄된 순환적 전체에 불균형, 불안정, 균열, 분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일종의 트라우마(상처)이다. 상처 없는 사랑은 없다. 사랑은 주체가 처음 주체로 되었을 때 겪었던 상처의 반복이고, 기억될 수 없는 그 본원적 상처--상징화에 저항하는 실재(the Real)--를 상상적 무대 위에서 재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인간은 자연의 열림이며, 사랑은 인간의 열림이다. 인간은 자연의 존재론적 트라우마를, 사랑은 인간의 실존적 트라우마를 재(再)상연하며 재(再)상기시킨다. 트라우마가 사후성(Nachtraglichkeit)의 논리-―이전에 존재했지만 사후에야, 그것도 구성적 과정에 의해 왜곡된 형태로만 발현된다-―에 따른다는 점을 떠올릴 때, 사랑은 앞서 인용한 시의 후반부처럼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 좁은 꽃병에
간신히 끼여 들어온 꽃대궁이
바닥의 퀘퀘한 냄새 속에 시들어가고
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 있다 
(이성복,「꽃은 어제의 하늘 속에」후반부)

사랑했던 이는 “어제의 하늘 속에” 있고 우리는 오늘의 하늘 아래를 걷는다.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라는 이 불가능한--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은 같은 해가 뜨는 동일한 하늘이라는 점에서 보았을 때-- 어긋남(miss)이 사랑의 원천(Ursprung)이며 사람의 거처(ethos)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사랑의 역사(役事)>에서 “사랑이란 사람과 하느님과 사람(사람―하느님―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즉 하느님이 중간규정으로 들어있는 관계”라고 말했는데, 지젝의 유물론적 기독교 해석을 통해 이를 보충해보자. 근본적 차이란 일자가 자기와 관계할 때 생기는 차이, 일자와 자기의 불일치, 일자와 자기 자리의 불일치이다. 기독교가 유일하게 진정한 일신교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요, 정확히 삼위일체의 교훈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교훈은 신이 신과 인간 사이의 균열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 신이 바로 이 균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존재자가 바로 그리스도이다. 그는 균열에 의해 인간과 분리된 피안의 신이 아니라, 균열 자체, 신을 신으로부터 분리하는 동시에 인간을 인간으로부터 분리하는 균열이다.”(<죽은 신을 위하여> 190쪽)
사랑이 주체가 자기와 관계할 때 생기는 차이, 주체와 주체의 자리의 불일치, 사람-사람 사이의 균열(에 터 잡는 어떤 것)이라면, 이러한 사랑의 도정 속에서 타자 또한 차이, 불일치, 균열 가운데 존재하는 ‘빗금 그어진 타자(Autre)’이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 주체의 균열을 가져오는 타자와의 조우라면, 이 사건의 이면은 주체가 행위를 통해 그 안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할 타자의 균열이다. 사랑이라는 간극 속에서 주체만이 아니라 타자 또한 변화의 운동을 시작한다는 얘기다. 요컨대, 사랑의 에토스는 ‘이 세계 아닌, 그러나 이 세계 안인’ 실재(the Real)의 간극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며, 사랑의 정치화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이 이행--지우는 빗금이자 여는 간극의 운동--을 사회 안에 도입하는 일(Society)이 될 것이다.

사랑의 정치화, 혹은 주체의 시학

이제 우리는 ‘빗금 그어진 주체()’에서 적어도 세 개의 주제--기호의 운동(Sign), 주체의 운동(Subject), 그리고 사회의 운동(Society)--를 끌어낼 수 있으며 이를 각각 시, 사랑 그리고 정치에 대입시켜볼 수 있다. 가령, 언어의 일상적 질서가 무의미한 잡담으로 전락할 때, 시적 언어의 폭력적 개입은 기표들의 자동화된 연쇄를 탈구시켜 기호 바깥의 사물을 향한 그리움에 들뜬(miss) 새로운 기의들을 산출(함으로써 기호를 구원)한다. 또 주체가 기존의 상징계에 순응하는 무력한 종속체(신민, subject)로 머물 때, 사랑은 자아를 분열시켜 타자에게로 개방하는 자기지양의 고통스런 과정으로 주체를 개방한다. 지젝에게 실재로서의 주체란, 주체가 오해 속에서 타자를 실현해가는, 또한 타자가 유혹 속에서 주체를 실현해가는 이 변증법적 과정 자체이다.
 
한 사회가 그 바깥, 즉 발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상상하지 못하는 자동기계(automaton)--모든 차이들이 다원성의 이름으로 그 안에 포섭된 글로벌 컨테이너--로 물화될 때, 그리하여 인간이 사회적, 정치적 역능을 지닌 동물에서 그저 사회라는 치안(police)의 우리(cage) 안에 사육되는 동물로, 유용한 자원으로 활용되다 무용한 ‘쓰레기’로 폐기되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으로 전락할 때, ‘정치적인 것’은 이 상호-관리적인 사육동물들의 공리주의적 질서 안에, 일상에 대해 시와 사랑이 그러하듯, 재난(disaster)과 테러(terror)의 외양을 하고 진입한다. 그래서 지젝은 ‘사랑의 정치’가 ‘공포(terror) 정치’와 포개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진정으로 실행해야할 과제는, 순간적인 민주적 폭발로 이미 만들어진 ‘통치(police, 치안)’질서의 토대를 침식하는 데 있지 않고, 바디우가 사건에 대한 ‘충실성’의 영역으로 지적한 곳에 놓여있다. 즉, 어떻게 민주적 폭발을 적극적인 ‘통치’ 질서로 전환시키고 그 질서에 새겨 넣을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영속적인 새 질서를 사회적 현실에 부과할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민주적 폭발에 있어서 정당하게 사유되어야할 ‘공포정치적’ 측면이다.”(<로베스피에르: 덕치와 공포> 55~6쪽) 그러나 사랑의 폭력성에 대한 수긍이 폭력적 사랑의 옹호가 아니었듯이, 사랑의 정치에 내장된 테러적 성격에 대한 지젝의 긍정도 테러리즘과 공포정치에 대한 옹호로 오해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아무런 본래적 가치도 없지만(따라서 파시즘처럼 폭력에 매혹되어 그것 자체를 물신화하고 찬양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의 혁명적 노력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기호로 기능”(<죽은 신을 위하여>, 53쪽)하는 것일 뿐이다.

현실을 궤도이탈 시키는 어긋냄의 행위

사르트르는 문학을 “영구혁명 안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이라고 말했다. 사랑은 그 영구혁명의 근원이며 목표이다. 그런 맥락에서, 지젝이 말하는 사랑의 정치는 시적(詩的) 주체를 산출하는, ‘사랑이라는 구멍’을 지닌 ‘공동’체(空洞體)의 도야(陶冶, bildung)이며 ‘현실’이라는 이름의 이데올로기적 구멍마개(stopgap)를 벗겨내 ‘실재’로서의 간극(gap)을 여는 어긋냄의 행위(act)이다. 상처 없는 사랑이 없듯이, 상처(기성 현실에 대한 배반과 어긋냄의 행위) 없는 정치도 없다.

최근 자퇴를 선언한 한 대학생의 행위는 기존의 세계에 구멍을 내고 현실(주의)적 기대 지평을 배반한 ‘사랑의 정치화’의 한 사례라 할 만하다. “경주마처럼 질주해온 길고 긴 트랙”에서 김예슬을 벗어나게 만든 것은 경주마의 피로와 절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학-기업-국가라는 상징계에 난 “작지만, 이미 시작된 균열”, 그 균열을 통해 그가 내다보게 된 새로운 세계와의 사랑, 아직은 비-현실인 ‘다른’ 세계(타자)와의 열애(熱愛)일 것이다. 문제는 그 ‘열-외(列-外)’하는 열애를 ‘자본의 압력’에서 해방된 특별공간으로, 혹은 ‘대안’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대안-대학, 대안-지성, 대안적 공동체 등의 예외적 해방구에 안착시키는 일이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열-외’하는 사랑을 일종의 준거점으로 대학 안에 재-도입하는 것, 그리하여 대학은 어쩔 수 없이 엘리트 또는 산업예비군을 생산하는 자본 지배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주의)을 한낱 이데올로기적 허깨비로 폭로하는 것이다. 취업불안과 자격증, 학점, 스펙 등등의 각종 공포로 지탱되는 신자유주의적 대학에 사랑, 즉 실재라는 균열과의 열렬한 동일시를 들여놓는 폭력적 제스처를 취하는 것, 우승열패라는 경쟁의 법(빗금)을 중단시키는 사랑의 법(열림)을 시작(詩作)하는 일이다. 비약하자면 이렇다. “이제 ‘쿨한’ 사랑은 집어치워라. 우리에겐 대열을 벗어는 열애의 고통이 필요하다. 너의 증상인 사랑을, 소비가 아닌 삶-정치로 구가하라. 그 열-외하는 열애의 궤적이 현실이라는 이름의 저 맹목적 행렬을 영구히 궤도이탈(列-外)시키도록!”  



<서강대대학원신문> 2010년 6월호에 기고.
 
*'열외와 열애'라는 키워드를 갖는 지면에 원고청탁을 받은지라, 내 생각대로 표제를 잡고 쓸 수만은 없었지만,
그런 제안(또는 제한)이 그리 나쁘게 작용하지 않고 생산적 자극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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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기차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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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신촌 기차역을 추억하며...

신기했어. 기차가 신촌을 가로질러간다니! 전철이 아니라 기차가 말이야. 어쩌면 새삼스런 사실이었는지 모르지.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기차가 지나가는 걸 이미 여러 번 보았을 게 틀림없을 테니. “당신이 두 번째로 보는 그것은 눈이 없어도 볼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눈이 아님 뭘로 보나? 관념으로, 건성으로 보는 거지. 그렇다면 내 망막을 스쳐갔던 것은 기차가 아니라 “기차”라는 명사(名辭)였던가. 하지만 처음 신촌역 앞에 섰을 때, 모든 게 달라졌지. 사정은 새롭고도 분명해졌으며 사물들은 제목소리를 되찾았다고나 할까. 역이 있었어, 진짜 기차가 다니는 역이 말이야. 그때 비로소 내가 학교 앞 건널목에서 보았지만 느끼지는 못했던 그 기차는 비로소 기차라는 이름이 아니라 진짜 기차가 되었던 거야.

첫 인상

야트막한 초록색 지붕과 아담한 입구, 안방보다 조금 큰 대합실을 가진 작은 역이었어. ‘예쁘다. 이런 게 있었구나.’ 신촌거리와 이대 앞길 사이에 다소곳이 앉아있던 신촌역은, 뭐랄까, 야단스레 흐르는 개울물과 화려한 꽃밭을 등지고 걷는 오솔길 언저리에서 만난 이름 모를 들꽃 같았지. 그러니까, 날 보러오라고 목청을 높이거나 야한 몸짓으로 정신을 홀딱 빼놓는 게 아니라 그냥 말없이 피어있었던 거야. ‘기다렸니, 나를?’ 여전히 말이 없더군. ‘여기 그냥 있었을 뿐이야.’ 몸이 살짝 달아올랐는데, 나만 몰랐나봐. 저쪽은 알아챘겠지. 내 얼굴이 붉어졌을 테니. 이런 우연하고도 조용한 마주침이 의외로 짜릿하지. 나처럼 구식 감성을 가진 남자들에겐 말이야. 아직은 80년대였고, 그땐 스무 살이었으니 더 했겠지. 난 첫눈에 보석을 찾았다는 걸 알았어. ‘너를 만나니 신촌이라는 그림 전체가 달라지는구나.’ 신촌역과 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어. 신촌역을 거쳐 열 댓번이나 엠티를 갔고, 짧은 교외여행도 다녀왔고 또 지금도 교제 중!

기차를 타다

역사(驛舍)로 들어서자 낡은 개찰구와 구식 모자를 쓴 역무원이 있었는데, 하, 그 70년대 풍이란! 차표를 사니까 들어갈 때 모서리에 구멍을 내주는 거야. 그 느낌, 혹시 아니? 화투장 반 만한 크기의 딱딱하고 도톰한, 하얀 마분지 위에 행선지와 삐뚜름한 화살표가 찍혀있는 차표(반드시 타이프라이터로 찍은 글씨여야 해. 자음과 모음이 듬성듬성 따로 놀면서도 전체적으론 날씬해 보이는 그런 글씨체 말이야)를 만지작거릴 때의 느낌. 거기다 빵하고 구멍을 뚫어 손에 쥐면, “야, 이제 기차 타러 간다아” 이런 탄성이 절로 나오거든. 어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는 게 아니라, 기차를 타려고 기차를 타는 거지. 놀이동산에서 청룡열차를 타듯 말이야. 그럴 땐 왠지 삶은 계란 한 줄이 생각나고 탑탑해진 목구멍을 넘어가는 탄산음료의 달짝지근한 맛이 입을 맴돌잖아. 아버지 손잡고 처음 경부선을 탔던 유년의 기억 탓이겠지. 하지만 이제 스무 살이니까 맥주도 괜찮았어.

엠티가는 길

첫 엠티. 신촌역을 지하철역으로 착각했던 덜떨어진 녀석들이 지각도착을 하고, 금요일 오후면 갑자기 몰려든 대학생들로 장바닥 마냥 소란스러워진 대합실의 흥겨움. 거기 잠시 몸을 담글라치면 이내 기차가 도착하고, 개찰구가 열리고,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처럼 와그르르 몰려나가는 거지. 그때 사진을 보면, 스무 살 무렵의 애들이 왜 그리 나이 들어 뵈는지 모르겠고, 또 어쩜 그렇게 천진하고 유치한 짓들을 거리낌 없이 해댔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말하면 노땅 티낸다고 하겠지만, 요즘 애들은 차림새는 젊어지고 마음은 늙어 버렸나봐. 아냐, 취소할게. 그거 내가 스무 살 때 어떤 아저씨한테 들었던 말인 게 방금 떠올랐거든) 아무튼, 기차는 우리를 싣고 달렸어. 객차 안에서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이나 민중가요를 불러도 뭐라는 사람이 없었지. 뭐 꼭 잘했다는 건 아니야. 가끔 승무원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고 할아버지들한테 잔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그래도 험한 분위기로 간 적은 없었던 것 같아. 많이 봐줬던 셈이지. 어떤 땐 객차 전체에 대학생들뿐이었어. 예약은 없었지만, 전세 엠티기차였던 거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즉석 미팅을 시도하는 과감한 애들도 있었는데, 잘해봤자 한 시간 남짓의 즐거움이었지만 수줍게 주고받은 눈빛이 오래 남는 경우도 있었고 아주 드물게는 엠티촌에서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연애로 이어져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친구들도 있었지. 걔들은 요즘 다 뭐하고 살랑가? 어라, 얘기 시작하려니까 벌써 접을 시간이네. 하여간 이놈의 수다란…!

다시 신촌역

일영, 장흥, 능곡, 송추 혹은 백마…대번에 촌스럽게 들리는 이 역명(驛名)들(따지고 보면, “신촌”이야말로 촌스런 이름이지)과 주변 공간들, 산, 논, 시냇물, 허름한 엠티촌과 얄팍한 느낌을 주는 카페들이 죄다 우리의 무대였어. 아니, 그곳들을 통해 세상이 우리를 청춘 단막극장의 배우로 세워줬던 건지도 몰라. 어쨌든 신촌은 “제2백양로”라는 다소 패권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새 이름을 얻은 연대 앞 길거리만 뜻하는 건 아니란 얘기야. 마음의 지도책을 추억의 독법으로 읽어보면, “신촌”이란 지명은 꽤나 넓은 공간으로 펼쳐지는데, 그건 잊고 살던 고향이나 옛 친구들의 이름처럼 친숙하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저 정겹고 낯선 역명들과 뭔가 통하는 것 같아. 신촌문화라? 문화가 뭐 별거겠니. 사람들이 함께 사는 거, 모여 노는 거 그리고 그 기억들의 몸뚱이겠지. 그래,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추억의 신경망들, 그게 없으면 몸은 몸이 아닐 거야. 뼈와 살의 덩어리일 뿐일 거야.

철로가 있었고 기차가 있었어(물론 친구들을 빼먹으면 안 돼). 서있을 때도 다가오거나 떠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차. 세월의 이미지, 시간의 살아있는 은유. 그리고 그 중심엔 항상 신촌역이 있었지. 적어도 내겐 그랬어. ‘이름 모를 들꽃’ 같다더니 왠 중심?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살면서 이런 사람도 만나고 저런 사람과도 사귀어보고 그러잖아. 그래도, 그 가운데로 늘 새롭게 돌아오는 얼굴 하나 있잖아. 뿌연 실루엣으로 고개를 드는 수줍고, 서툴고, 예쁜 얼굴. 옛날 그 사람의 첫 얼굴, 지금 그 사람의 옛 얼굴... 첫사랑, 모든 사랑의 첫 느낌말이야. 그러니, 상업주의에 쩔은 신촌에선 맨 날 신상품과 새것들만 득세하고 문화와 추억들은 다 죽어버렸다고 실망하지는 마. 아직, 기차가 있고, 신촌역이 있고, 설혹 그게 다 사라져도, 첫사랑처럼 돌아오는 마음들이 있잖니. 그거면 돼. 문화야 또 만들면 되는 거지, 만들어지는 거지, 안 그래? 

 2004. 6. 22.      


* 벌써 이렇게 오래됐나? 글쓴 날짜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무렵 내 수업을 들었던 한 학생이 원고를 부탁했다. 자기들이 만드는 신문에 싣고 싶으니 '신촌문화에 대해서, 신촌의 어떤 공간, 장소에 얽힌 추억과 함께 써달라'는 것이었다. 글을 줬는데 그후로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추억은 그런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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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감벤과 동물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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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동물이 문제인가? 
Giorgio Agamben, The Open: Man and Animal (2004)
Peter Atterton & Matthew Calarco eds, Animal Philosophy (2004)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도그빌Dogvill>은 “개 같은 동네” 전체가 피와 불의 재앙을 맞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라스트 씬이 주는 진정한 충격은 그 잔혹한 장면들로부터가 아니라 그런 “인간말살”(genocide)의 장면들을 묘한 쾌감 속에서 지켜보며 ‘그래, 저런 것들은 씨를 말려야…’라고 무심코 내뱉는 자신을 소스라치며 돌아볼 때 찾아온다. 일종의 “반성적 충격”이랄까. 하여, 소문이 자자했던 <도그빌>의 반미(反美)주의는 오히려 이 영화에서 진짜 문제적인 논점---인간 혐오와 ‘피의 숙청’의 옹호---을 흐려놓는다.

마을을 피난처로 삼고자했던 한 인간(난민)에 대한 집단적 착취와 유무형의 폭력…. 아마 그런 죄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만큼 순결한 역사를 지닌 인간 공동체는 없으리라(제국주의의 본산인 트리에 감독의 유럽이 미국보다 깨끗한 과거와 기억을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순결한 희생양에서 무시무시한 심판자로, 백치 같은 피해자에서 악마 같은 가해자로 돌변하는 주인공 그레이스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실패한 구원자 그레이스와 그녀의 아버지가 휘두르는 저 묵시적 폭력은 과연 벤야민이 “순수하고 신성한 폭력”이라 부른 그것일까?

잿더미가 된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는 ‘모세’라는 이름의 개다. “개 같은” 동네에서 “개의 마을”로 변한 도그빌에서 구원된 ‘모세’를 포옹하는 ‘그레이스’--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녀에게서 매 맞는 말의 목을 끌어안고 꺼이꺼이 울었다는 광인 니체의 무구한 얼굴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엔 다만 무자비한 신의 온기 없는 포즈, 혹은 제 애완견을 쓰다듬는 무심한 연쇄살인범의 공허한 눈빛 같은 것이 떠돌 뿐이다. 서로 티격태격하는 마을(Vill)은 사라지고 순수에의 의지(Wille)만이 휑하게 남은 곳, 중간자인 인간을 소거해냄으로써 서로의 (좌우가 뒤바뀐) 거울상인 GOD(신)과 DOG(동물)이 더 이상 서로를 구별할 수 없게 된 곳. 얼마 되지 않는 세트들마저 사라진 그 황량한 평면은 문득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영문판 표지에 나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camp)의 설계도면과 닮아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의 철학들이 새삼 동물(animal)을 문제 삼게 된 배후에는 시사적 이슈들---이를테면 대규모 축산업의 비인간성(?)을 돌아보게 만든 광우병과 조류독감의 공포, 생명을 돈벌이 대상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생명공학에 대한 혐오, 연민에 가득 찬 동물애호가들의 눈빛, 인간과 동식물 모두가 가이아의 품 안에 하나임을 역설하는 환경론자들의 외침, 채식주의자들의 취향 등등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는 무엇보다 신과 동물이 서로를 비춰보는 거울의 망실이, 그 둘이 나누어짐과 동시에 존립가능해지는 경계이자 문턱으로서의 인간의 망연자실이 있다(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 같은 노골적인 책들이 감추고 있는 당혹감이 바로 그것이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지오 아감벤은 『열(려있)음: 인간과 동물』에서 바로 이 위태로운 경계 위에 다시 올라선다. 『호모 사케르: 주권과 벌거벗은 생』에서 언급되었던 주제들---바따이유의 “무두인(無頭人, Acephalous)”, 코제브가 제출했던 역사의 종언과 인간의 동물화 그리고 속물(snob)의 문제가 다시 다루어지고 티티안(Titian)의 회화 <님프와 목동>에 대한 인상적인 비평 속에서 사랑과 삶의 ‘무위’(無爲, desoevrement) 같은 중요 개념이 감각적 형상을 얻기도 하지만 표제와 직접 연관된 주제는 하이데거 말년의 강의록인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 나온 테제들---돌(사물)은 세계 없음(Weltlosigkeit) 속에, 인간은 세계 형성(Weltbildung) 속에 그리고 동물은 “세계 빈곤(Weltarm) 속에 존재한다---을 해석하는 가운데 이뤄진다. 거기서 동물 환경의 존재론적 위상은 “개방되어 있으나 열려질 수 없음(탈은폐 없는 개방성openness without disconcealment)”으로 드러난다. 닫혀있지 않지만 열 수도 없는 이러한 상태는 아감벤이 『호모 사케르』에서 예외상태---“바깥에 붙들려있음(ex-capere)”---라 불렀던 것, 열려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는 ‘법의 문’ 앞에 선 시골사람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그러므로 우리를 ‘동물과 인간의 경계(호모 사케르)’로 이끄는 현재의 상황은, 들뢰즈적인 ‘동물-되기’에서 “웰빙”의 소비에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양날의 칼이다. 아감벤이 "인간성 회복" 같은 낡은 구호로 돌아가지 않음은 분명하나 “인간의 완전한 동물화는 동물의 완전한 인간화와 일치한다”는 식의 알쏭달쏭한 말들은 그 자신도 현재의 미혹(captivation)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들린다.

피터 애터튼과 매튜 캐라르코가 편집한 『동물철학』은 이런 아포리아와 대결할 기초체력을 기를 때 매우 유용한 독본(reader)이 되어줄 것 같다. 니체, 하이데거, 바따이유, 레비나스, 푸코, 들뢰즈-가타리, 데리다, 뤽 페리, 식수, 이리가레이 등 20세기 유럽철학의 거물들이 “동물”에 관해 사유한 주요 대목들을 선별해 제시하고 이에 관해 2차적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구성돼있다. 실존주의와 현상학에서 포스트구조주의와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꽤 광범위한 조류들을 커버하고 있지만 눈치 빠른 독자들은 선택된 저자들의 목록에서 어떤 일관성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일관성인가? 자기 안의 타자, 내부의 바깥, 인간 안의 동물을 통해 인간을 사유하기 혹은 탈존(ex-sistance)하기….



<연세대학원신문> 2006년 11월호 서평면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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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라는 검은 가방 운반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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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이라는 검은 가방 운반하기
: 수잔 벅모스, 김정아 옮김,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 프로젝트』(문학동네, 2004)





1980년, 벤야민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대 사상가 게오르크 숄렘은
리사 피코트란 이름의 한 베를린 출신 노파와의 전화통화를 녹취했다.
40년 전 나치에 점령된 파리를 탈출한 벤야민이 망명을 위해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가이드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벤야민이 커다란 검은색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거워 보이기에 같이 들자고 했지요.
그가 말했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새 원고입니다.”
“그걸 뭐 하러 가져오셨어요?”
“이 가방은 저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릴까봐 가져왔습니다. 구해내야만 하는 것은 바로 이 원고랍니다. 저의 목숨보다 소중한 겁니다.”

그러나 망명은 프랑스의 국경마을 포르-부에서 좌절되었다.
벤야민은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자살이나 다름없는 죽음을 맞이했고
서류가방은, 포르-부에 잠시 남아있다 유실된 그의 무덤처럼, 이제 흔적조차 없다.
사람들은 그 서류가방 속에 들어있던 것이 벤야민 최후의 저작이자
어쩌면 금세기 최고의 문화비평서일 지도 모를 책, 바로 『파사젠베르크』의 초고라고 믿고있다.
애도 받을 장소인 무덤을 잃어버린 벤야민은 그 검은 서류가방과 함께 유령처럼 출몰하여 사람들을 홀리고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죽은 것, 사라진 것이 애도되지 못할 때, 우울증의 형태로 끊임없이 산 사람들에게 출몰한다고 말하는데,
우리시대의 가장 권위 있는 벤야민 연구자 중 한 사람인 수잔 벅-모스도 그런 우울증에 빠져든 사람인 것 같다.
(우울증이야말로 생산적 사유의 배양액이 아닐까.)
벤야민이 심장병의 고통을 무릅쓰며 운반하려했던 그 무거운 짐,
전쟁의 혼란과 폐허들로부터 구원되어야만 할 것은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바로 이것이라고 말했다는
그 검은 가방 속에는 도대체 어떤 생각들이 들어있었을까? 『발터 벤야민과 아케이드프로젝트』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벅-모스의 대답이며,
존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이 기묘한 존재―검은 가방 속의 벤야민―에 대한 연구서이다.

부재하는 책에 대한 연구서

부재하는 책에 대한 연구서라? (보르헤스가 떠오른다. 하지만 벅-모스의 책은 소설이 아니다.)
이런 작업이 가능한 것은 『파사젠베르크』를 쓰기 위해 벤야민이 모아놓은 엄청난 분량의 자료들
(도판, 사진, 복사물, 인용문과 이에 대한 논평 그리고 책의 구상과 방법론 등을 담은 짤막한 메모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1982년 『벤야민 전집』 제5권으로 출간된 『파사젠베르크』는 벤야민이 쓴 책이 아니라
바로 이 자료, 인용과 논평, 메모들의 묶음으로 무려 1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1927년 50쪽 분량의 에세이로 구상되어 13년 간이나 진행된 “아케이드프로젝트”는
1940년 사망하기 직전에 스무 배가 넘는 규모로 확대되어있었지만 여전히 미완의 형태였던 것이다.
벅-모스는 이 자료묶음을 책이 쓰여지기 위한 준비물들의 난삽한 덩어리가 아니라,
몽타주라는 방법론에 의해 쓰여진, 그 나름의 완성도를 지닌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
그녀에 따르면, 벤야민은 자신이 모은 역사적 자료들을 가지고 자신의 철학적 성찰을 시작하려했던 것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파사젠베르크』는 시작되지도 않았고, 많은 비평가들이 회의적으로 생각하고 있듯이,
내적 모순과 방법적 혼란 탓에 시작될 수도, 완성될 수도 없는 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달리 벤야민은 역사적 자료들이 꾸고있는 꿈, 사물들 자체가 표현하고 있는 사유를 옮겨놓으려 했으며,
이러한 사유는 이미지와 캡션, 인용과 논평, 그리고 최소한의 방법구상 메모들로 이루어진 『파사젠베르크』 속에
이미 충분히 표현돼있다는 것이 벅-모스의 생각이다.
물론, 사물은 말이 없다. 그러나 사물의 이름을 부르는 충실한 철학자는 사물의 표현적 잠재력을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잠재력을 말이라는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사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만든다. 극단적으로 말해,
“커피 찌꺼기에서 예언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철학, 그러한 예언을 설명하지 못하는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라 할 수 없다.”
(벤야민이 아케이드의 상품더미들을 보며 떠올렸을 이러한 철학을,
벅-모스는 『파사젠베르크』라는 자료더미를 보며 계속 되씹지 않았을까?)


상품의 복화술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 마치 자연물처럼 들어있는
사물의 꿈과 사유(신화가 된 상품들의 폐허인 아케이드 속에 깃들어있는 역사의 집단적 소망이미지)는
명시적인 개념적 사유로 포착될 수 없기에, 언뜻 우발적으로 보이는 파편적 이미지들의 병치 속에서
하나의 구성원리로 잠재해있게 된다.
몽타주를 통해 사물들 스스로가 사유를 표현하도록 한다는 이 구상이 개념 없는 혼란으로 전락하지 않는 까닭은
그 구성원리가 좌표를 통한 벤야민의 체계적 사유와 보이지 않는 서사에 의해 일관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벅-모스는 수집가, 넝마주의, 탐정, 창녀, 도박, 만보객, 오스만, 그랑빌, 푸리에, 보들레르 등등
『파사젠베르크』의 테마들이 석화(石化)된 자연과 한시적 자연을 양극으로 하는 현실의 축,
꿈과 깨어있음을 양극으로 하는 의식의 축을 교차시켜 얻은 네 분면
―본서 제2부의 내용이기도한 ①자연적 역사인 화석(흔적), ②역사적 자연인 폐허(알레고리),
③신화적 역사인 물신(환등상), ④신화적 자연인 소망이미지(상징)―위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두 축의 교차점에 위치한 상품의 (물신이자 화석이고, 소망이미지이자 폐허인) 모순적 얼굴이
“변증법적 이미지”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번역서 273쪽의 표에는 “자연적 역사”가 “자연적 자연”으로, “신화적 역사”가 “신화적 자연”으로 잘못 표기돼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서사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종교적인 예언이나 신학적 비의일까?


유물론적 역사와 주름의 변증법


<역사철학테제>에서 벤야민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메우기 위해 사실들의 더미를 모으는 보편사(부르조아의 역사)와 달리
유물론적 역사가는 역사의 진행과정을 폭파시켜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기를,
또 시대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삶을, 일생의 사업으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사업을 획득
하게 되리라고 말했다.
이러한 “접힘”의 인식을 거꾸로 진행시킬 때, 우리는
한 작품 속에서 필생의 업적을, 필생의 업적 속에는 한 시대를, 그리고 한 시대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과정을 보존하면서 동시에 지양하는 “펼침”의 의미론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접힘과 펼침, 이를테면 주름(fold)의 변증법 속에서
사물들, “역사적으로 파악되어진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19세기 초반에 세워진 파리―벤야민이 “19세기의 수도”라고 불렀던― 파사주는 근대적 상가 아케이드의 기원이었다.
벤야민은 바로 이 원조 쇼핑몰을 자신의 역사철학의 대상들을 발견했고,
그의 생존 당시 이미 낡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상가와 상품들 속에서
부패한 부르조아 문화의 모든 것들이 다가올 새 시대의 꿈들과 함께 잠들어있는 것을 보았으며,
아마도 거기서 씨앗의 시간(혁명적인 현재-시간Jetztzeit)을 발견하고자 했다.
구체적 대상들에 대한 이러한 바라봄(seeing)을
역사유물론이라는 변증법을 통해 하나의 구원적 앎(seeing)으로 계시하는 것,
(이 책의 원제는 Dialectics of Seeing, 즉 '봄 /앎의 변증법'이다) 
근대자본주의의 신화를 폭파하여 집단적 소망의 새 역사가 깨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아케이드프로젝트”였다면, 벅-모스의 주장처럼,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정치적­실천적 기획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최후의 순간에 벤야민을 이끌었던 리사 피코트의 증언 한 대목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파사젠베르크』를 읽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하나의 가이드 노릇을 해준다.


해석의 정치학―저항의 오르막


요즘, 발터 벤야민이 금세기 최고의 학자이자 비평가라고 말하는 요즘,
사람들은 가끔 나에게 '그가 원고에 대해 무슨 말을 했나? 벤야민은 원고내용을 말했나?
원고는 새로운 철학 개념을 논했나?' 등등의 질문을 합니다.
세상에! 나에게는 사람들을 이끌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철학은 산맥 반대편에서 내리막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지요.
그 당시 중요했던 것은 다만 몇 명이라도 나치 치하에서 구해내는 것이었습니다.

1923년 <제국의 파노라마: 독일 인플레이션 유람>(『일방통행로』에 실려있음)에서 벤야민은
빈곤과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오늘날의 우리들이 아닐까?―은 “스스로를 단련해야 하며,
고통은 증오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기도의 오르막길이 되어야 한다”고 썼다.

아케이드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인 1928년 이 글이 다시 출간되었는데, 문장은
“고통은 슬픔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저항의 오르막길이 되어야한다”로 의미심장하게 바뀌어있었다.

벅-모스의 책을, 역사의 험난한 산맥 반대편에서 마냥 기다리던 철학이
드디어 벤야민의 검은 가방을 전달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벤야민이 『파사젠베르크』에서 어떤 개념과 방법으로 무엇을 논했는지에 대한 훌륭한 해설서이고
동시에 벤야민에 대한 성공적 애도, 즉 무덤을 되찾아주는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고통의 저 힘겨운 오르막길이 끝나지 않았다면,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압제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여전히 다급한 과제라면,
우리는 이 책을 철학적 해석의 내리막길이 아니라 정치적 저항의 오르막길로 읽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출몰(해야만)하는 벤야민의 유령으로 응접해야하지 않을까.
검은 가방 속에 들어있던 것은 19세기 파리 파사주의 진실이나,
20세기 상품자본주의의 궁극적 비의(秘意)가 아니라
그러한 실천에 대한, 벤야민의 유령과도 같은 요청이 아닐까.




※ 2004년 한국출판협회에서 간행하는 서평전문 잡지(제목이 기억나지 않음)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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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에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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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의 에토스, 혹은
경계의 심연에 뛰어든 자들을 위한 엘레지


티모시 트래드웰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곰을 너무나 사랑했던 이 남자는 매년 여름 알래스카 국립공원 내 회색곰 서식지에 무단으로 들어가 몇 달씩 곰들과 함께 살았다. 그는 ‘친구’이고 ‘이웃’이었던 여우와 곰들에게 이름을 붙여 말도 걸고 함께 놀기도 하면서 태초의 인간인 아담을 흉내 냈다. 한때 배우를 꿈꿨던 트래드웰은 곰들과의 생활을 셀프카메라로 찍어 사람들 앞에 내놓았고, 이내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쩌면 그것은 야단스러운 자기현시, 일종의 쇼였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처음 시작될 때는 그런 기미가 보였다. 그러나 이 괴짜 환경보호운동가의 ‘곰들과 함께 춤을’이 13년 만에 끔찍한 비극으로 막을 내렸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쇼일 수가 없었다. 2003년 가을, 트래드웰은 여자친구와 함께 다시 알래스카를 찾았고, 자신의 낙원에서 곰의 습격을 받았다. 공원관리인은 텐트 주위에서 두 사람의 찢겨진 신체 일부를 찾아냈고, 사살된 곰의 뱃속에서는 티모시의 손목시계가 나왔다.

뉴저먼 시네마의 명장(明匠) 베르너 헤어조크(Werner Herzog)가 이 특이한 사건에 사로잡힌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트래드웰이 남긴 수백개의 비디오테이프와 주변인물 인터뷰를 교차 편집해 완성한 헤어조크의 <그리즐리 맨 Grizzly Man>(2005)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 “자연에는, 경계가 있다. 한 남자가 그 경계를 가로지르는 데 13년의 생애를 바친다.”




헤어조크는 넘지 말아야 할 경계, 또는 한계상황에 빠져들어 자멸해가는 자들을 다뤄왔다. 대표작 <아귀레, 신의 분노>(1972)는 16세기 스페인의 정복자 아귀레가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리며 안데스산맥을 넘고 아마존 강을 거슬러, 마침내 밀림 속으로 소멸해가는 이야기다. 아귀레는 복귀를 명하는 상관을 죽이고 부하와 원주민들을 무의미하게 희생시키며, 마치 불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귀레는 원숭이 떼로 뒤덮인 뗏목에 홀로 남아 광기어린 눈빛을 번뜩이며 이렇게 외친다. “나는 신의 분노다!”
아귀레의 분노는, 동일한 모티브를 가진 조셉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에 나오는 정복자 쿠르츠의 마지막 대사 “무섭다, 무섭다 horror, horror…”와 함께 읽어야 한다. 요컨대, 분노의 이면은 공포이며, 원숭이와 신 ‘사이’에 놓인 인간 아귀레는 ‘신의 분노’이자 ‘원숭이의 공포’이다. 카메라―신의 응시(gaze)―가 패닝(panning)기법으로 뗏목 주위를 조롱하듯 빙글빙글 돌 때, 아귀레는 갑옷과 투구를 걸친 ‘특이한 원숭이’처럼 보이며 ‘자연’이라는 육체와 ‘신’이라는 영혼으로 갈라진 세계의 간극을 형상화하는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의 광기어린 눈빛은, 갈라진 두 힘 의 긴장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중심에 자리한다. 이런 맥락에서, 곰(자연)과 인간(문명)의 경계에 자신의 생을 풀어놓았던 트레드웰은 또 다른 아귀레였다.



사람들은 트래드웰이 안전수칙을 무시한 대가를 치렀으며, ‘죽으려고 환장했던’ 트래드웰의 삶은 그에 어울리는 죽음을 갖게 됐을 뿐이라고 쉽게 결론짓는다. ‘곰과 사람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를 함부로 침범하면 안 된다. 그건 곰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곰의 본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트래드웰은 동물사랑이나 자연보호를 빙자해 곰의 세계에 침입한 불청객이었다. 그가 곰에게 쏟은 사랑도 실은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실패자의 뒤틀린 자기애였을지 모른다. 그보다는 곁에 있다 애꿎은 죽음을 당한 여자친구가 동정의 대상이 될 만하다. 저나 죽을 것이지 여자친구까지 사지로 끌어들인 트래드웰의 무모함은 도덕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맞는 얘기다. 헤어조크는 트래드웰에 대한 세상의 비난을 반박하지 않으며 그의 감상적 동물애호에 동조하지 않는다. 함께 동물보호운동을 했던 동료들조차 점점 종교적 신비주의에 빠져드는 그를 걱정했었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올 것이 오고야만’ 것이었고 그가 남긴 마지막 비디오들을 보면 누구보다 자신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곰은 곰, 사람은 사람’이 트래드웰 사건이 남긴 교훈의 전부일까? ‘곰의 것은 곰에게, 사람의 것은 사람에게!’라는 이 안전한 경계가 마지막 진리일까?

헤어조크는 이 괴짜가 남긴 촬영물들이 직업적 자연다큐 작가들이 찍은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을 알아본다. 그것은 훨씬 더 생생하고(곰들이 싸우며 똥을 지리는 장면), 훨씬 더 아름다우며(여우와 곰과 트래드웰이 함께 노니는 풀밭 장면) 한층 더 슬프다(숫컷 곰들이 잡아먹은 새끼곰의 뼈를 발견한 트래드웰이 새끼곰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하는 장면). 왜 그럴까?

어느 해 여름 가뭄이 들어 강의 수위가 낮아지자 연어 떼가 곰 서식지까지 올라오질 않았다. 연어는 곰의 주식 중 하나다. 트래드웰은 라디오에서 비가 올 확률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난생 처음 신께 기도를 드린다. 비가 오지 않아 사랑하는 곰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비를 좀 내려달라고. 애원으로 시작한 기도는 협박으로 바뀌었다가 분통을 터트리며 발광을 하는 몸부림으로 이어진다. 다음날 새벽, 놀랍게도, 기상예보에 없던 폭우가 오직 그 지역에만 쏟아진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기적적 은총이었을까? 헤어조크는 단정 짓지 않지만, 거기서 트래드웰의 영상이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과 생동감의 비밀 한 자락이 살짝 드러난다.
직업 작가들이 찍은 영상에서 자연과 동물들은 타재적(他在的) 대상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카메라와 피사체의 경계는 확고부동하다. 그러나 트래드웰의 카메라는 그의 삶과,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일체가 되어 돌아간다. 그 세계는 주관적 욕망의 투사(投射)가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허물어진, 실재하는 꿈의 자리로 화한다. 트래드웰의 ‘곰들과 함께 춤을’은 여기서 쇼에서 삶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라, 쇼인 채로 그의 삶이 된다. 삶이 오직 신만을 관객으로 하는 연극(‘쇼’)이라면, 신도 배우가 되는 트래드웰의 영상에서는 삶과 쇼의 경계가 사라진다. 

에로스의 에토스, 혹은 ‘더불어 삶’의 심연
 

나는 이 영화를 EBS의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보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올해 이 영화제의 표제는 “지구, 더불어 사는 곳”이었다('그래, 지구가 더불어 사는 곳이긴 하지, 서로 죽이고 잡아먹으면서...'). 그리스어 에토스(ethos)는 보통 윤리(ethics)로 번역되지만 원래는 서식지(habitat, ‘사는 곳’)를 뜻했다. 곰의 서식지에 들어가 곰을 사랑하다 곰의 먹이가 된 남자의 ‘에토스’는 무엇이었을까? 사람을 잡아먹기도 하는 곰과 기꺼이 함께 살고자했던 이 사람의 ‘서식지’(ethos)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같은 영화제에서 상영된 곤잘로 아리온 감독의 <안데스산맥 조난기 Stranded: I’ve Come from a Plane That Crashed on the Mountains>(2007)에 우연찮게도 이 문제를 푸는 실마리가 들어있었다. 이 다큐는 1972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안데스산맥에 조난(stranded)되었다가 극적으로 생환한 사람들의 회고담이다. 눈과 바위로 뒤덮인 고립무원의 산악지대에서 45명의 탑승객 중 16명이 기적적으로 생환했다. 그런데 그들이 구조된 직후, 자연스럽고도 난처한 질문이 제기됐다. 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오지에서 어떻게 70일 넘게 살아있을 수가 있었는가? 도대체 뭘 먹고 살아남았나? 영화는 당시의 기자회견 장면을 보여준다. 한 생존자가, 모두가 예상했지만 누구도 감히 직접 듣기를 원할 수 없었던 바로 그 답을 일러주었다. 인육! 사람이 (비록 시체였다고는 하지만) 사람을 뜯어먹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생존의 윤리냐, 윤리의 생존이냐?’, ‘야만이냐, 문명이냐?’ 대혼란의 심연에 기자회견장이 삼켜져버릴 듯한 위기의 순간에, 마치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해왔다는 듯, 성자 예수가 나타나 그들 모두를 구원했다. 생존자는 인육을 먹었다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성경 구절을 인용했다.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을 다 마시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리하여 생존자들은 사람고기를 뜯어먹고 생명을 부지한 ‘괴물들’이 아니라, 친구들이 전해준 마지막 선물(살과 피)로 자신의 생을 이어간 ‘인간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같은 사태를 그럴싸한 미문으로 다르게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최후의 만찬이란 그저 말의 성찬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트래드웰이 곰의 ‘특별한 저녁식사’에 자기 육신을 공양했을 때, 곰은 ‘최후의 만찬’에 참석했던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듯이, 그의 메시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헤어조크는 그렇게 믿는다. 트래드웰은 웬일인지 죽기 며칠 전부터, 자신을 잡아먹게 될 늙은 회색곰을 집요하게 카메라에 담았는데 헤어조크는 화면에 잡힌 곰의 무심한 눈동자―그 황갈색 심연(!)―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저 눈에서 그저 먹이를 바라보는 권태로움밖에 볼 수 없는데, 티모시에게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트래드웰이 그 눈동자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눈이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일뿐만 아니라 영혼을 비춰보는 거울이기도 하다면, 트래드웰이 곰의 눈에서 보았던 것이 권태롭게 반복되는 생존의 먹이사슬, 무심한 필연의 왕국만은 아니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가 남긴 최후의 기록에서 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곰의 습격 당시 우연히 캠코더가 작동 중이어서, 비록 영상은 없었지만, 처절한 상황이 담긴 녹음기록이 남았다. 이 녹음에는 트래드웰에 대한 손쉬운 평가와 비난을 무색케 만드는 어떤 것이 있다.



곰이 물어뜯는 동안에도 트래드웰은 특별한 저항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그는 생전에 ‘곰이 나를 잡아먹더라도 그 곰을 절대 죽여선 안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여자친구에게는 마지막 힘을 다해, 달아나라고(그래서 너는 살라고) 비명을 질렀다. 허나 여자는 경고와 애원이 뒤엉킨 남자의 울부짖음에 아랑곳없이,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곰에게 달려들었다. 다 큰 회색곰은 키가 3미터에, 몸무게 400kg에 육박하는 괴물이다. 상대가 될 리 만무했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동면을 앞둔 곰의 ‘특별한 저녁식사’가 되었다. 트래드웰이 곰에 미쳐 아예 곰의 일부가 되고자 했다면, 여자는 생과 사가 교차하는 끔찍하고 긴박한 순간에 꺼져가는 트래드웰의 생명 속에 자신을 던져 넣는 치명적 결정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곰이 남자를, 남자가 여자를 삼키는 이 사슬은 이중으로 꼬인 나선(double stranded helix)이다. 그 한 가닥이 생존이라는 육체의 행렬―먹는 입의 주이상스―을 타고 내려간다면, 다른 한 가닥은 사랑이라는 언어의 행렬―말하는 입의 에로스―을 타고 올라간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곰을 사랑했다, 제 생명을 그것의 생명을 (비록 잠깐일지라도) 연장시킬 제물로 바칠 만큼!
조르쥬 바타이유가 말했듯이 에로스가 “죽음까지 파고드는 생”이라면, 두 사람을 삼킨 것은 곰의 입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에로스의 심연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성에 의해 ‘…그래서 너는 살아’라는 트래드웰의 외침도 두 개의 방향을 갖는다. 그 메시지는 곰에게는 그의 육신을 통해 (저항 없는 순한 몸짓으로) 전해졌고, 여자에게는 그의 격렬한 말을 통해 전해졌다. 곰과 여자는 그 전언에 꼭 맞게 반응했다. 육신으로 전한 메시지는 다른 육신(곰)의 주이상스가 되었으며, 그 육체의 행렬에서 트래드웰의 몸은 곰의 몸으로 이어졌다(연속). 그러면 말로 전한 메시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의 말은 여자에게서, 마치 나르시스의 언어가 에코에게서 그러했듯이, 반복되었고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반복된 그 말―“달아나, 그래서 너는 살아”―의 울림에 따라 행동했다. 곰과 싸우려는 그녀의 무모한 행동은 “그래서 너는 살아”라는 말이 육화된 몸짓이었다. 에로스 속에서, 그녀는 신화 속의 에코처럼 그의 언어로 변했던 것이다. 그녀는 그의 말이 지시하는 바에 ‘따라’ 움직인 것이 아니라(그의 말이 지시하는 바와 반대로 움직인 것도 아니라) 그의 말이 ‘되어’ 움직였다. 곰을 공격해 그를 구하려는 그녀의 무모한 행위는 “달아나, 그래서 너는 살아”라는 말의 신체적 번역이었던 셈이다. 그녀의 몸은 그렇게 그의 말을 모방(미메시스)함으로써 그가 지시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방향에서, 그러나 본질상 동일한 내용을 반복했다. 똑같은 몸짓이 외견상 정반대쪽으로 이뤄지는 거울에서처럼 말이다.

최후의 순간에 곰과 인간 모두를 사랑했던 트래드웰은 그 사랑의 표현으로, 곰에게 자신의 몸을 주었고 여자에게 자신의 말을 주었다. 곰은 그 사랑의 몸을 받아들여 그와 ‘한 몸’이 되었고, 여자는 그 사랑의 말을 받아들여 그와 ‘한 말’이 되었다. 하여 동물과 인간의 경계 자체가 되었던 트래드웰은 에로스의 몸짓 속에 소멸함으로써 경계도 지워버렸다. 그것이 서로 다른 서식지를 갖는 곰과 인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는지, 우리에게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분명한 것은 그가 최후의 순간에 몸과 말, 육체와 언어, 물질과 정신이라는 통일될 수 없는 두 행렬이 하나로 꼬여드는 자리에 스스로를 조난시켰다가(stranded) 구원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즐리 맨’은 경계가 되어, 자신과 함께 경계를 소멸시키는 자의 (마치 예수와도 같은) 운명을 보여준다. 거기서 비참하게 찢겨진 육체와 비명만을 보든, 자신의 죽음을 지복의 순간으로 승화시킨 숭고한 몸짓을 보든, 그건 각자의 몫이 될 것이다. 

최근의 다큐영화인 <세상 끝과의 조우 Encounters at the End of the World>(2007)에서 헤어조크는 남극을 찾아간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이 세상 끝에까지 흘러들어왔는지 찬찬히 살피며 대화를 나누던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이 생긴 펭귄 한 마리와 조우한다. 펭귄은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먹이를 찾아 바다로 향하는 자신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극지 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리로 가면 추위와 먹이부족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 보다 못해 녀석을 잡아 무리 속에 돌려놓아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펭귄은 다시 무리를 벗어나 고집스레 극지로 향한다. 한 늙은 연구자가 헤어조크에게 충고한다. “지켜볼 수 있을 뿐, 돌려세울 수는 없습니다.”
사실 그런 “지켜보기”야말로 헤어조크가 내내 해온 작업일 터이다. 그러나 헤어조크 영화의 매력은 냉정한 “지켜보기”에 있지 않다(그런 다큐감독은 헤어조크 말고도 많다). 호기심, 찬탄, 냉소, 유머, 아이러니가 뒤섞인 그의 시선은 지켜보면서 동시에 지킨다. 무엇을 지키는가? 이해할 수도 동의할 수도 없지만, 그것에 의해 사이-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이 지탱되고 지속되는 성스런 것들이다, 그의 영화는 주체를 갈라놓는 경계의 심연 속으로 뛰어들어, 그 경계와 더불어 소멸해가는 영매들(medium)을 위한 애가(哀歌)이다. 그 엘레지를 통해 우리는 저 영매들의 불가능한 에토스를 살아볼 수 있다. 당신이 당신 안에 살아있는 영매와 다시 조우할 수 있다면 말이다.


 

※ 서강대학원신문 2009년 12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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